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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추리소설'에 해당되는 글 6건
2008. 12. 8. 13:00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 '느린시간'이란 닉네임으로 남겼던 글과 댓글을 재활용하여, 올해 하반기에 읽은 일본 추리소설 신간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봅니다. (책을 읽은 분들만을 위한, 불친절하고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랍니다.)
참고: 올해 읽은 일본 추리소설 재활용 리뷰 (이건 상반기)

[albook|small|right|8992036671|width=100]<통곡>, 누쿠이 도쿠로
<통곡>에 대한 아내의 삐딱한 평

지금 보니 <통곡> 이벤트에 백플이 달려 있네요. 높은 인기예요.
사실 저도 참가할까 하다 별로 쓸 말이 없어서 - 도를 만나면 도망가기 바빠요 - 그만두고 사서 읽었죠.

아내가 먼저 읽었습니다. 상당히 빠른 진도를 보이던데 내용을 미리 알고싶지는 않아서 다 읽을 때까지 일부러 말도 안 걸었습니다. 중간쯤에서 술술 읽히기는 한데 사건 진행이 지루하다고 한마디 하더군요. 그리고 밤늦게 다 읽더니 피식 웃는 겁니다.
"좀 시시해. 나는 눈치챘어."

설마, 최근 여기서 읽은 <통곡>의 평들은 찬사 일색이었는데... 어쨌든 저도 이제 책을 잡아듭니다.
마쓰모토라는 이름의 정체모를 인물은 신흥 종교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의 가슴 속 구멍을 메워줄 빛을 찾으려 합니다.
한편, 유아 유괴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수사는 답보 상태인 가운데, 수사1과 과장의 스트레스도 심해져 갑니다.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을 교차시키며 진행됩니다. 이 소설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기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비치지 않음에도 독자는 책을 내려 놓기 어렵습니다. 책의 남은 분량은 자꾸 줄어드는데 수사는 오리무중, 대체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엉뚱한 상상만 하게 됩니다.

449쪽,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만나 결말을 짓습니다. 이거 참, 이 반전은 참신성보다는 오히려 그 '정교함'에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너무나도 작위적인, 억지스럽다는 느낌. 불공정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솔직한 감상은,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되다 만 소설"

이란 평에 공감하게 되는군요. 평범한 독자들의 기대와는 다른 곳에서 끝이 났다고 할까요. 하긴 천인공노할 살인마일수록 추리소설에서 다루기는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통곡>은 여러 가지 소재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유괴살인사건 자체를 제외하고도 신흥종교(<미륵의 손바닥>에서 본 적이 있고), 경찰 조직의 갈등(캐리어와 논캐리어 얘기는 너무 많이 들었어요), 매스컴의 보도경쟁(와이드 쇼 하면 <모방범>) 등은 일본 미스터리 독자에게는 꽤 익숙하죠. 이것들이 분위기나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조금 더 흥미롭게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책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계실 분들께는 조금 미안한 얘기만 늘어놓았군요. 우리 부부의 생각일 뿐이예요. ^^
<통곡>의 가장 큰 장점은 흡인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60여 쪽을 읽어가면서 그렇게 지루한 부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때로는 미궁에 빠진 사건 때문에 골치아픈 형사의 입장에서, 때로는 구원을 찾아 사이비 교단에 빠져드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독자 역시 같이 고민하면서 사건을 안타깝게 맞이하게 되니까요. 실컷 안좋은 소리 하다가 뜬금없지만, 분명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스포일러:
'반전'하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들게 되는데, <통곡>의 반전은 그 둘 - '관계'와 '시간' - 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네요. 다른 종류의 연속살인사건으로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요? 트릭이 아까워서 말이죠.

번역하신 분이 개인적으로 남겨주신 댓글 중에서:
... 옮긴이가 이런 말 하는 게 우스운 경우라는 걸 알면서도, 통곡에 대해 많은 분들의 찬사에, '아니 그렇게 훌륭한 소설이었단 말인가' 하며 당혹스러워했었습니다. ...

<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인사이트 밀>의 살인 도구에 대한 시시콜콜 잡담

<인사이트 밀>을 재미있게 읽으신 미스터리 팬들과 함께 나누고픈 잡담입니다.

이 작품의 여러 가지 살인 방법과 도구에는 나름의 설명과 출전이 같이 나와요. 순서대로,

구살 - 부지깽이 - 얼룩끈 (코난 도일)
독살 - 니트로벤젠 - 녹색 캡슐의 수수께끼 (존 딕슨 카)
교살 - 끈 - 구석의 노인 사건집 (오르치)
약살 - 니코틴 - X의 비극 (엘러리 퀸)
총살 - 22구경 공기총 - 제3의 총탄 (존 딕슨 카)
압살 - 천장 - 백발귀 (에도가와 란포)
사살 - 보우건 - 비숍살인사건 (반 다인)
격살 - 돌 - 두 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 (모리스 르블랑)
참살 - 손도끼 -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이들 작품 중 몇 개나 읽어보셨나요? 제가 제대로 읽은 건 넷 밖에 없지만 책에서 맨 처음 나오는 얼룩끈에서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얼룩끈에서의 살인 도구는 워낙 유명한 '그것'이지, 부지깽이는 아니니까요. 홈즈를 모르는 미스터리 팬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현실이니 얼룩끈의 범인은 부지깽이를 휘둘러 살인을 저지른다는 큰 오해가 생길 수 있겠는걸요. 좀 더 살펴봅시다.

녹색 캡슐의 수수께끼는 번역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작품 안에서 나중에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독은 니트로벤젠이 아니라 청산가리라고요.

구석의 노인 사건집의 끈에 이르면 이건 작가의 장난이란 생각이 들게 돼요. 제가 아는 한 그 끈은 절대로 목을 조르지 않거든요.

X의 비극은 어릴 적에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쨌든 여기서는 니코틴이 쓰이는 게 맞습니다.

제3의 총탄에서는 결국 22구경 공기총이 살인 흉기로 드러나지요.

백발귀는 못 읽어봤습니다. 짐작컨대 산 채로 무덤에 묻히는 거라면 압살은 대충 맞지만 그 도구는 상당히 다르군요.

비숍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작품 안에서 설명합니다. 보우건(석궁)이 아니라 보통 활(장궁)이 흉기로 쓰인다고요. 이 정도는 상황에 맞춘 변화라고 볼 수도 있죠.

두 개의 미소를 가진 여인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전혀 모릅니다. 패스.

끝으로 이누가미 일족은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이군요. 이건 "도끼가 실제로 사용되면, 거꾸로 세워 놓을 필요가 없어지잖아."라는 대사처럼, 이누가미 일족을 읽은 사람이라면 웃을 수밖에 없는 매칭이랍니다. 작가도 그걸 의도한 듯해요.

정리한다고 했지만 뒤죽박죽이군요. 각각의 도구는 미스터리 작품과 관련이 있기는 한데, 좀 엉뚱하게 연결한 것이 몇몇 있어요. 부지깽이, 끈, 그리고 도끼의 경우에는 확실히 작가의 의도, 또는 장난이 보여요. "독자들이여, 고전을 읽자"라는 메세지 같기도 하고. 그 효과가 있었는지 이누가미 일족이 어서 나오기를 제가 간절히 기다렸던 것은 이 소설 때문이기도 했어요.

십각관의 등장인물들(카, 오르치, 엘러리, 반 다인, 모리스 등)이 생각나기도 하는, 대담하고 즐거운 소설이었습니다.

[albook|small|right|8984013137|width=100][albook|small|right|8989722802|width=100]<이유>, 미야베 미유키
<유리 망치>, 기시 유스케
- 이 두 작품은 신간이 아니지만...
미스터리와 경제 - 이유, 유리망치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어요. 이유야 어쨌든 우리 나라 사정은 더 심각하구요.
일본 미스터리 독자 입장에서는, 판권료나 종이값 덕분에 책값이 더 오르겠거니 하는 걱정이 먼저군요.
경제와 장르문학의 상관관계는 어떨까요? 청년 실업이 늘수록 온라인게임이 인기인 현실과 비슷할까요, 아니면 오락소설 따위에 더 이상 쓸 돈은 없어질까요? 어쩐지 후자가 더 그럴 듯하네요.
그런 까닭인지, 경제 문제가 녹아 있는 미스터리 작품은 드물죠. 저는 <이유>와 <유리망치>가 생각나요.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기 침체는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만들어 냈고, 작가는 그 혼란 속에 자리한 뉴시티 웨스트타워 2025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인하도록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요.

전용면적 101.24제곱미터니까 분양면적은 대충 40평형인 셈인가요. 2025호의 분양가는 1억720만엔이었고, 분양받은 첫 주인은 전매를 목적으로 구입했다가 부동산이 폭락하자 1년 후 8250만엔에 매물로 내놓았고 결국 8120만엔에 팔았죠. 다음 주인은 1년 반 뒤에 7250만엔에 팔 수밖에 없었구요. 세번째 주인인 고이토 부부는 자기 돈 3500만엔에 나머지는 빌려서 이 집을 샀어요. 이 때가 1992년 봄이군요.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이 부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집은 경매에 나오게 돼요. 그러나 비극은 이제 시작이죠. 이 숫자들은 요즘들어 더 실감이 나는군요.

<유리망치>의 2부는 아키라란 소년의 이야기예요. 1부의 밀실살인과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이 고등학생의 험난한 인생은, 팔라듐(백금과 비슷한 귀금속의 일종) 선물거래에 손대기 시작한 아버지의 몰락에서 시작하지요. 투자 초반에 큰 이익을 냈다가 상황이 나빠지자 선물거래회사 직원은 아버지를 이렇게 꼬드겨요. "걱정 마세요.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시장은 반드시 반전됩니다. 지금까지의 손해는 열 배가 돼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결국 고리대금업자를 찾게 되죠. 그 뒤는 안봐도 비디오.

'물타기'가 뭔지 아시죠? 주가가 내려 손실이 났을 때 추가매입해서 반등시 수익을 기대하는 건데, 하락장에서 증권회사 직원이 하는 얘기가 늘 그렇죠. 바닥이 보인다고, 저가매수의 기회라고. 엊그제 은행에 갔는데 옆 창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펀드를 해지하는 것 같더라구요. 집에 가셔서 부부싸움 같은 거 하지 마시고 그냥 깨끗이 잊어버리셨기를.

어쨌든 이것만 보면 미스터리 속에서 경제는 사람들에게 복수의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 밖에 못하는 것 같아요. 돈이 아닌, 경제 현실을 담고 있는 다른 미스터리 작품들이 궁금해지네요. 제가 미스터리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albook|small|right|8925811235|width=100]<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읽고 나서 생각하는 '얼음꽃'의 몇 가지 의미

<얼음꽃> 이벤트에 당첨되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와 이 카페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1. 부서지기 쉬운
괜찮은 회사 사장의 조카인 주인공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안락한 저택에 보장된 미래, 그리고 가끔 대학 동창들과의 모임을 즐깁니다. 그러나 남편이 출장 중인 어느날, (언제나 그렇듯)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이런 일상을 바꿔놓습니다. 남편의 내연녀라는 전화 속 인물은 남편의 글씨가 적힌 '모자母子 건강 수첩'으로 주인공을 도발합니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 그러나 자신은 불임. 주인공은 이성을 잃고 맙니다.

2. 차가운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주인공의 행동은 냉정합니다. 남편은 이틀 뒤 돌아오는데다 약속들도 잡혀 입습니다. 적敵의 주소를 쉽게 알아낸 뒤, 남편의 열쇠꾸러미에서 수상한 열쇠를 확보, 완벽히 준비한 뒤 잠입합니다. 그리고 냉장고 속 주스에 농약을 탑니다. 문제는 그곳에 있던 두 사람의 사진과 모자수첩. 둘을 가지고 나오려던 그녀는 다시 생각해보고 제자리에 돌려 놓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생각했겠죠. 알리바이도 나름 준비한 뒤, 주인공은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정확히 나타납니다. 계획대로 그 여자는 죽었고, 이렇다할 증거도 남지 않았습니다.

3. 고독한
경찰 수사가 진행됩니다. 공교롭게도 죽은 여자는 주인공 남편의 회사 직원. (언제나 그렇듯) 한 형사의 직감이 주인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는 엉뚱하게도 '남편의 회사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죽은 여자와의 사진입니다. 수사 진행에 관심을 갖고 있던 주인공도 의혹을 품게 됩니다. 겨우 이런 여자에게 남편이? 자신의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가? 그 와중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까지가 대략 1/3의 내용입니다. 중요한 몇가지 단서는 일부러 적지 않았습니다. ^^)

4. 날카로운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 끌려다닐 인물이 아닙니다. 양친을 비행기 사고로 잃었을 때도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안흘린 아이였는걸요. 물론 이런 설정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만큼, 오직 하나의 목표물 - 남편과 X - 을 향한 그녀의 증오는 마치 비수와도 같습니다. 경시청의 민완 형사가 아무리 열심히 (그러나 조금 지루하게) 수사를 펼쳐도 여기엔 당할 수가 없네요. 이 소설의 백미는 주인공에 대한 형사들의 심문 장면인데, 그래서인지 용의자와 형사가 서로 바뀐 것 같답니다.

5. 마지막으로
반전이 있기는 합니다만 내용은 실질적으로 책의 'File 7: 재판' 부분에서 끝이 납니다. 재판이니 누가 이겼을까요? 궁금하시면 읽어보셔야죠. 이 책의 장점은 주인공의 심리가 드러나는 행동의 묘사에 있습니다. 그것은 애 아빠인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끌어가는 힘은 강한데 비해 기대했던 결말이 조금 완만합니다. 요즘은 낭떠러지 같은 결말이 유행이라서요. 여기서는 사건의 정체가 중반부터 조금씩 밝혀지다보니 독자에게 큰 충격은 못 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한, 아마도 추리소설로서 논쟁이 될 부분은 사람의 행동이 그렇게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냐는 건데 (이런 의문이 두 번 들게 됩니다), 그 두 번 모두 작은, 그러나 치명적인 실수가 등장하니까 나름 공정합니다. 그리고 '얼음꽃'의 마지막 의미는... 아, 1번에서 벌써 얘기했군요.

사족같은 댓글:
히가시노 게이고의 <브루투스의 심장>이 사람을 조종하는 일은 맘대로 안된다는 쪽이었다면, <얼음꽃>은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대체로 예상할 수 있다는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대립하는 양자가 이를 각각 활용하는 구성은... 아, 더 얘기하면 안됩니다. '그의 한마디로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류와는 거리가 있지만, <얼음꽃>의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는 아주 훌륭합니다. 곰곰히 되새겨볼수록 더 그래요.

덤으로, 다시 찾아본 기억과 추억의 차이
"추억과 기억이란 게 어떻게 다른지 알아?" 사이카와는 담배를 끄면서 말했다.
"추억은 즐거웠던 일, 기억은 나빴던 일투성이죠."
"그렇지 않아. 나쁜 추억도 있고 즐거운 기억도 있어."
"그럼 뭐가 다르죠?"
"추억은 전부 기억할 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 수 없다는 거야."

-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pp.257-258

PS
오늘 아침 책을 덮은 <도착의 론도>, 상권 중간쯤에서 손을 놓은 <도구라마구라>에 대해서도 조만간 뭔가 적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요.

2008. 7. 25. 16:57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 '느린시간'이란 닉네임으로 남겼던 글과 댓글을 재활용하여, 올해 읽은 일본 추리소설 신간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봅니다. (책을 읽은 분들만을 위한, 불친절하고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랍니다.)

[albook|small|right|8925518651|width=100]<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대전으로 돌아오니 "0교시, 우열반 자율화" 같은 뉴스들만 기다리고 있네요.
회랑정 살인사건의 교훈도 그런 것이었지요. 부모를 잘 만나든지, 얼굴이라도 잘 생기든지.
그러나 우리 딸은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아닌가?

바란

"내가 어때서!"


("벚꽃지는 계절에 엄마는 딸에게 헤드락을 거네"에서 - 비공개 설정)

[albook|small|right|8952750624|width=100]<외딴섬 퍼즐>, 아리스가와 아리스

에가미 선배는 직소 조각의 산을 파헤치더니 분류를 시작했다. (......) 조각을 맞추려고 하지는 않고 그저 뱀을 이루는 조각들을 모으고만 있다.
"흐음, 기본을 이해하고 있구먼."
의사는 에가미 선배의 작업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이 방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에가미 선배의 말에 소노베는 빙긋 웃었다.

<월광게임>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각 장의 제목 - 밀실 퍼즐, 자전거 퍼즐, 모아이 퍼즐, 자살 퍼즐, 직소 퍼즐 - 처럼 아기자기한 트릭들이 흥미로웠고, 풋풋한 주인공들의 청춘(!)도 남쪽 바다 작은 섬에 잘 어울렸습니다.

독자에 대한 도전을 마주하고 저는 솔직히 범인을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머리가 굳은 건지, 지나치게 많은 힌트들에 집중력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가미 선배의 추리와 더불어 범인이 밝혀지고 나니 조금만 더 생각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뭐, 늘 그렇지만요.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밖의 수수께끼 - 범행의 동기나 방법, 밀실 트릭, 다잉 메시지 등 - 는 범인이 고백하기 전에는 추측만 가능한 것들입니다. 알찬 '퍼즐 북'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인공 커플의 데이트와 보물찾기 같은 건 추리의 대상이 아니라도 언제나 재미있는 읽을거리니까 괜찮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대화는 책의 초반부에 나옵니다. 에가미 선배는 비슷한 방법으로 뱀이 아니라 사건을 이루는 힌트 조각들을 모아 범인을 맞춥니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없다'는 그의 차가운 지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범인을 도출해 내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말을 이끌어 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궁지에 몰린 범인이 으레 저지르는 행동 - 범행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탐정의 추리에 장단 맞추기 - 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슬프군요.

("<외딴섬 퍼즐>을 푸는 한 가지 방법, 그리고 번역 실수"에서)
 
[albook|small|right|8901083388|width=100]<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최근에 <제3의 시효> 관련 글에서 소설의 내용이 만화책 <강력1반>의 2권으로 나와 있다는 얘길 듣고 검색해보니 새 책은 절판이고 중고는 때맞춰 한 질(1-4권) 있더군요. 사는김에 <절대미각 식탐정> 1-8권도 같이... (이건 절판은 아니지만 싼맛에)

강력1반 만화책

<강력1반>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흡인력 있는 스토리 + 깔끔한 성인만화 그림체입니다.
특히나 고독한 야수들이 모인 강력반 조직 내부의 갈등이 사건에 깔려 있어 더 흥미롭네요. 2권 "제3의 시효"는 결말이 여운을 남기고 있고, 1권 "침묵의 알리바이", 3권 "밀실의 구멍", 4권 "죄수의 딜레마" 모두 원작의 힘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강력1반 시리즈도 계속 출간된다죠?
다만 결말을 이렇게 다 알아버려서... 전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보겠습니다. ^^

("중고 만화 <강력1반>, <절대미각 식탐정>"에서)

[albook|small|right|8991684475|width=100]<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며칠 전, 동네 서점에서 제목이 가물가물한 책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의 이해>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있나요?"
아저씨는 '도법의 이해'로 검색하시더니 고개를 젓고... (그게 뭔 지도책이여?)
알고보니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었다죠.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공부를 너무 많이 했나봅니다. 아직도 UTM을 기억하고 있다니...
결국 인터넷으로 사서 다 읽은 기념으로 고백합니다.

('한 마디' 게시판에서)

느린시간: "오퍼런트의 초상"은 이퀼리브리엄(영화) 같이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데 제게는 그것이 <1984>였습니다. "끔찍한 열대"에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하신 분들도 꽤 있겠죠?

(구름이님이 쓴 "히라야마 유메아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댓글)

[albook|small|right|890108371X|width=100]<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의 세번째 단편 "비할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다잉메시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잉메시지가 나오죠. 이 글은 그 첫번째에 대한 사소한 정보와 감상입니다.

피해자의 강력한 소망을 담고 있는 첫번째 다잉메시지는 겐지 향(香) 기호인지라 우리 나라 독자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위키 백과가 제일이죠. '香の図' 항목에 다음 기호 일람표가 나옵니다.
겐지 향 기호표

©Wikipedia


52가지 기호를 겐지이야기(源氏物語)의 권 제목들로 이름붙였다고 합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읽어보니, 아하! 이건 5가지 향기를 구별해내는 게임에서 답을 표시하는 방법 - 일종의 OMR 카드 기입법 - 이었군요.

그러니까, 출제자가 5가지 종류의 향목(香木)들 25개를 섞어서 5개를 골라냅니다. 그럼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하나씩 향기를 맡고 서로 같은 것을 줄을 이어 표시하는 거죠. 하쓰네(初音)는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2번과 4번이 같은 향이고, 3번과 5번도 같은 향이란 의미인 듯합니다. 13번 아카시(明石)는 5개 중 3,4번만 같다는 뜻이겠죠.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정확히 52가지가 있군요. 어쨌든 꽤나 호사스런 놀이인 건 분명합니다.

살인자를 표시하는 이 다잉메시지의 특이한 점이라면 전달의 대상(단 한사람)과 전달의 목적(복수!)인데 그런 이중적인 구조가 제게는 정말 참신했습니다. <월광게임>에서의 그 불량품 다잉메시지에 너무 실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책 147쪽에 그려진 '아카시'가 (밟혔다는 구실로) '1011'로 보이게 꼬아 놓은 정도는 그냥 넘어가렵니다.

번거롭긴 했지만 이렇게 찾다 보니 이 단편이 조금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제가 아직 <X의 비극>을 읽지 않았다는 거죠. 이걸 어떻게 구해 본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의 다잉메시지 (스포 잔뜩)"에서)

2007. 10. 6. 01:34

몇 년 사이에 좁은 의미에서 '일본 미스터리(추리)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을 나름 꽤 많이 읽었습니다. 정리해 보니 단편집을 제외하고 책으로 44권이더군요 (상하, 1~3권 등은 하나로 쳐서).

이걸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나의 취향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먼저 작품(표제작)의 출간 연도를 살펴봤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했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별

역시 최근작들을 좋아합니다. 작가별 통계에서도 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작품이 2000년대에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40, 50년대에 솟아 오른 막대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영향입니다. 번역된 대표작들(4권)은 다 읽었으니까요. 여러분도 여유 있을 때, 자신이 읽은 작품의 출간 연도를 한 번 살펴보세요.
(몇몇 작품들의 시대를 생각하다보니, 미스터리물의 구성은 90년대 후반을 경계로 해서 휴대폰의 보급 이전/이후 이렇게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작가별로 보면 저의 취향이란 것이 조금 더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별

다들 좋아하시는 작가들이지요. 적절한 구분인지 모르겠지만, 고전, 사회파, 신본격 모두를 골고루 읽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합리적인 수수께끼와, 사람들의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최근 읽은 라이트 노벨 쪽 작가들은 두 권 이상 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쪽이 노리는 독자가 아닌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스터리 장르에 국한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포함시킨 온다 리쿠의 <여섯번째 사요코> 같은 경우는 조금 아리송...) 아직 채 읽어보지 못한 작가들도 몇몇 있습니다.
최근 관심이 식어서인지 책을 사는 게 조금 뜸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매일 이곳저곳 눈팅하며 정말 좋은 책을 계속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소개, 짧은 감상, 독후감을 써 올리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책 읽기 좋은 시원하고 맑은 가을입니다~

2007. 4. 1. 02:10
읽을거리가 떨어져 서점에 들러 일본 추리소설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미륵의 손바닥"이고, 다른 한 권은 오늘 다 읽은 이 책이다.

[albook|small|left|8949702894|]문신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1948
(내용과는 무관하게 표지가 왜 이모양인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미륵의 손바닥"이 2005년에 나왔으니 일본 추리소설의 할아버지와 손자쯤 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조금도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며, 본격(머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과 변격(변태적 심리와 공포)의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미스터리 순위(문예춘추, 1986) 10위에 오를 만한 작품이다.

때는 1946년, 문신사의 삼남매 중 한 명인, 몸에 문신을 새긴 한 여자의 머리와 팔다리만 밀실에서 발견된다.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하고 밀실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 가운데, 그녀의 정부(情夫) 역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의 진실에 접근한 그녀의 오빠도 문신을 새긴 몸가죽이 벗겨진 채 살해된다. - 사건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거리가 가득하지만, 도입부를 제외하면 분위기나 심리 묘사로 흐르지 않고 수사 진행을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후반부에 추리소설 팬에게는 익숙한, '독자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도 포함해서.

결말에서 밀실살인이라는, 추리소설에서 상식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은 이 소설의 백미에 해당한다. - "기계적인 밀실은 무너지더라도 심리적인 밀실은 깨뜨리기 힘듭니다." - 독자 입장에서 사건이 제시하는 많은 수수께끼를 풀 가망은 거의 없지만, 머리를 많이 쓰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 소설에서 문신사의 세 남매는 온몸에 각각 세 가지 문신을 가지고 있다.

오빠: 지라이야(自雷也) - 두꺼비로 둔갑한 요술사
쌍둥이 언니: 오로치마루(大蛇丸) - 구렁이로 둔갑한 요술사
쌍둥이 동생: 쓰나데히메(綱手姬) - 민달팽이로 둔갑한 요술사

그리고 셋 사이의 관계는, 가위 바위 보처럼, 두꺼비가 민달팽이를, 민달팽이는 구렁이를, 구렁이는 두꺼비를 이기는, 이른바 3자 견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이름들, 아주 낯이 익다.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으로 인기가 많은 나루토 19권 표지와 그 안의 한 페이지를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설의 세 닌자라 불리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오른쪽 페이지는 위에서부터,

지라이야: 두꺼비 蝦蟇 (새우 하, 두꺼비 마)
오로치마루: 이무기 蟒蛇 (이무기 망, 뱀 사)
쓰나데히메: 민달팽이 蛞蝓 (괄태충 활, 달팽이 유)


이다. (한자 찾아 쓰느라 고생 좀 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동물을 소환하여 부린다.

나루토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서 만나니 나름 반갑다. 찾아보니, 이 이야기는 宋나라때 나온 "해사(諧史)"에 바탕을 두고, 일본으로 흘러가 에도시대 말기에 "지라이야 호걸이야기(児雷也豪傑譚話)"라는 책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출처: http://www.kamejiro.net/cgi-bin/sibai/11.html)

추리소설 독후감이 최신 만화책으로 흘러버렸다. 이런 것이 오래된 고전의 매력이라면 매력.
참고로, 나루토의 주인공(만화책 표지 한가운데) 이름은 우즈마키 나루토, 소용돌이 어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것!
2007. 1. 23. 23:31
그동안 읽은 일본 추리소설들,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전에 감상을 적었던 작품들은 고전 본격물과 사회파를 일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엔 최근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1. 고전/본격

[albook|small-gif|left|894970241X|][albook|small|left|8952746791|height=150][albook|small|left|895274781X|height=150]








외딴섬 악마
, 에도가와 란포
란포의 취향은 서커스에서 시작해 인체변형을 거쳐 결국 동굴탐험으로 끝나더라구요. "음울한 짐승"에 비해 너무 통속적인 느낌.

팔묘촌(八つ墓村), 요코미조 세이시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아스하카촌 첫페이지
이것도 결국은 동굴탐험 + 보물찾기. 다만 좀 더 재밌어요.
만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에피소드, '아스하카 촌(明日墓村)'의 첫 장을 보면 탐정 미와가 머리에 손전등을 매고 일본도와 총을 들고 있죠. 팔묘촌 옛 살인마의 아이템이네요.
참고로, 최고(!)의 추리만화인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모든 에피소드 제목은 모두 유명 추리소설 제목의 패러디입니다. 작가에게 경의를, 그리고 그걸 모두 조사하신 분께도 감사를.
http://www.h4.dion.ne.jp/~fukuda/nervous.htm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이건 전에 따로 얘기했지요. 신본격으로의 다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신본격
그러고 보니 신본격이랄 수 있는 작품도 꽤 읽었습니다. 모르고 읽었지만...

[albook|small|left|8990785901|height=150][albook|small|left|8990785987|height=150][albook|small|left|8959750220|height=150][albook|small|left|8901061988|height=150][albook|small|left|8937831236|height=150][albook|small|left|8990785871|height=150][albook|small|left|895298238X|height=150]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의 시작이자 신본격의 선언문.
"(전략) 역시 미스터리에 걸맞은 것은 명탐정, 대저택, 괴이한 사람들, 피비린내나는 참극, 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 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요컨대 그 세계 속에서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단, 지적으로 말씀이야."
"경애하는 모든 선배들께 바친다"는 헌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핵심은 서술 트릭이랄 수 있겠는데, 유심히 읽어보면 결코 반칙이 아닙니다. 평가가 많이 갈린다지만 저는 추천!

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폭풍의 산장' 패턴의 아~주 극단적 형태. 시공간의 고립과 왜곡. 더 이상은 발설 불가.
설정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 해도 그것이 만들어낸 흡인력은 놀랍습니다. 두꺼운 분량이지만 밤을 새웠던 기억이...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아무리 주를 달고 변명을 해도 이건 서술 트릭이 아냐! 재미는 있지만 다시 읽긴 무리.
작가는 신본격 1세대인데 이 작품은 사회적인 XX문제를 다루었으니 사회파 소설인가?
(까발리기를 피하려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여섯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고등학생들의 비밀 이야기는 추리소설로 적당하지 않은지, 장르가 좀 애매해요. 갑자기 토네이도가 몰아치는 장면부터는 귀신 얘기로 흘러가는 느낌. 신본격 작가로서의 데뷔작 치고는 조금 아리송.

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할머니 옛날 얘기같은 에피소드 넷. 그러나 각각이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모티브가 되는, 장르소설이지만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때문인지 아직 네번째 에피소드는 못읽었어요. ^^;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프로그래밍을 좀 해봤기에 재미가 더한 작품. 다만 탐정의 조수 캐릭터가 완전 에러.
작가가 공대 교수라지만 <오브젝트 지향 시스템 분석 설계 입문>을 권두에 인용하신 건 너무하지 않나요?

잘린머리 사이클, 니시오 이신
트릭, 트릭, 트릭,…… 천재들끼리 재밌게 노는 건 좋은데, 이렇게 마구 결말을 꼬아대면 평범한 독자들은 어쩌라구요.

법칙 하나: (일본에서) 최고의 프로그래머라면 OS쯤은 자기가 만들어 쓴다.

3. 사회파
뭉뚱그려 사회파라고 하지만 이 작가들은 다 제각각인듯...

[albook|small|left|8989722802|height=150][albook|small|left|8954601863|height=150][albook|small|left|8991931138|height=150][albook|small|left|8982738657|height=150][albook|small|left|8984013137|height=150][albook|small|left|8991207456|height=150][albook|small|left|8972753696|height=150]








이유, 미야베 미유키
부동산 버블 붕괴와 법원 경매(제가 속이 쓰리네요, 쩝.)를 가지고 미야베 미유키 식으로 쓴다면 이 소설이 됩니다.

모방범 1-3, 미야베 미유키
와이드쇼와 옐로 저널리즘을 가지고 미야베 미유키 식으로 (구구절절하게) 쓴다면 이 소설 1-3권이 됩니다.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미유키
최면술과 서브리미널 광고기법을 가지고 미야베 미유키 식으로 쓴다면 이 소설이 됩니다.

이 작가는 방대한 소재를 모아 가족애를 버무려 훌륭한 작품을 쓰긴 하는데, 그 독특한 스타일이 이제는 식상해요.

유리망치, 기시 유스케
건축공학,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터넷 상거래가 결합된 하이테크 트릭의 완전범죄. 그러나 그 핵심인 의료 머신 루피나스 V는 왠지 좀 개그스러운데, 우리 동네 피부과 광고에 루미니스 레이저 시술법이 나와서 그런가... 1부 탐정 관점의 본격물, 2부 범인 관점의 사회파로 구성되는, 조금은 전형적인 구성.

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이 작품은 신본격이니 사회파니 하는 꼬리표가 무색합니다. 추리소설의 재미와 더불어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묵직한 전개가 좋아요.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맘에 드는 작품.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사교육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아기자기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미야베 미유키라면 등장하는 가족들의 인생 얘기에 아마도 몇 권짜리 대작을 쓰지 않았을까.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어떤 쪽이 더 어려운지 생각해 볼까요. 그런데 그 전에 왜 문제를 만들고 또 풀어야 하나요? 이 작품의 알리바이 트릭은 정말 신선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이 소설은 진정한 로맨스입니다.

4. 기타

[albook|small-gif|left|8984013048|height=150][albook|small|left|8954218210|height=150]








아임 소리 마마, 기리노 나쓰오
우리 부부 공통 감상: 범죄자든 탐정이든 '괜찮은' 인물이 없다면 읽을만한 얘기가 못 된다.

돌속의 거미, 아사구레 미쓰후미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아도, 기법이 참신해도, 일단 재미가 없어요!

월관의 살인 상·하, 아야츠지 유키토 글/사사키 노리코 그림
철광(鐵狂, 철도 매니아)에게 바치는 만화 작품. 언밸런스한 순정만화 그림체가 어울려서, 사람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도 웃긴걸 어떡하죠? 왜곡된 공간과 의외의 범인이란 점에서는 '관' 시리즈의 막내동생답군요. 이 작품 최대의 반전은 상권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5. 소감
이른바 '신본격'이라고 하는 일군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수수께끼 풀이와 반전의 임팩트에 작가가 모든 힘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그러나 최근작인 "잘린머리 사이클"을 읽고 나니 경쾌한 문체와 참신한 트릭에도 불구하고, 그런 즐거움도 지나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마구 죽어나가는게 싫어서는 아닙니다. ("잘린머리 사이클"에서 죽는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적어요. - 이것도 천기누설) 무엇보다, 바깥 사회와는 담 쌓은 장소에서 보통 사람은 상대도 못할 천재들이 상식과는 수만광년 떨어진 행동을 하고 있다는 설정은, 조금 동화스럽군요. 독심술과 예지력까지 버젓이 인정되는 추리소설에서, 힘없는 독자는 설정을 받아들이고 참여를 포기할까요, 아니면 작가의 공정함을 믿고 뿌려진 힌트를 머리 싸매고 주워담아 볼까요?

결국, 좋은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요? 그게 궁금해서라도 남들이 재밌다는 추리소설은 다 읽어 보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날 때까지.


2005. 9. 8. 16:34
물론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은 일단 제외하고 나열해 보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지만 읽은 순서와 작가별로 대충 묶었습니다.

유령신사, 시바타 렌자부로
유령 탐정(?)의 존재를 제외하면 내용 자체는 그다지 독특하지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등장인물들로 서로 연결되는 형식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유령의 추리(폭로?)는 나름대로 뒤통수를 톡 치는 반전의 효과도 있고... 책의 해설에 부록으로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이 있어 그 뒤 다른 책을 사는데 가이드가 되었다.


점과 선/제로의 초점, 마츠모토 세이초
"점과 선"은 사회파의 시작이 되는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전까지의 '본격'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횡령 사건이라는 배경은 그다지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실제 기차 시간표로 만들어진 트릭과 함께 형사의 고독한 추적에 어울리는 어두운 바닷가의 묘사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로의 초점"은 전후 일본의 혼란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증명"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서는 아내의 앞에 펼쳐지는 거칠고 막막한 바다(혹은 과거)의 존재는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덤을 상징하는 바다는 결말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불연속 살인사건, 사카구치 안고
내가 고른 모든 책이 다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끈적한 분위기 속에서 많이 죽는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오래 전에 출판된 듯한 인쇄상태에다 상하권으로 나뉜 것까지, 서점에서 얼른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사서 읽고보니, 이건 사람이 죽고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추리소설이라 얘기하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껄끄럽다.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종전과 고도성장기를 살아가는 일본 사람들과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른 나라 사람인 내가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출판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내가 보기에도) 추리소설로서의 약점은 전체적인 작품성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층의 사각지대, 모리무라 세이치
"인간의 증명" 이후에 읽은, 작가의 추리소설 데뷔작이다. 호텔 열쇠 트릭, 숙박부 트릭, 비행기편 트릭 등이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엔 뭔가 조금 부족하다. 다만, "高層の 死角"이란 제목은 정말 근사하다.



음울한 짐승, 에도가와 란포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 이름대로 어릴적 읽었던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분위기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덧붙여 일본적(?)인 변태 성향까지 가미되어, 누구 말대로 작품의 흡인력은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 뒤에 있는 몇몇 단편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포장된 표제작 "음울한 짐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읽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포의 "황금벌레"에 대한 오마쥬이자 패러디랄 수 있는 "이전동화" 등 단편들 역시 기괴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러나 자꾸 읽게 되지는 않는다...)

흑사관 살인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이 책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수십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고 말았으니 결국 탐정과의 대결에서는 완전히 도망친 셈이다. 번역이 어떻니 하는 말이 있지만, 더 잘 번역한다고 해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바뀌는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제는 작가의 정신세계다. 1930년대에 활동했다고 하니 시인 李箱이 연상되기도 한다. 서양 문화가 지식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 때가 지난 지금, 이런 소설은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혼징 살인사건/나비부인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뭐니뭐니해도 명탐정 긴다이치 쿄스케(코스케?)가 처음 등장한 작품! 그러나 문제의 핵심인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옥문도"와 더불어 작품의 테마가 되는 일본적인 봉건성과 인습이란 것도 마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읽다보면 김전일 시리즈가 떠오르는, 기상천외한 트릭의 연쇄살인을 다루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다.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가장 최근에 읽은 일본 추리소설. 앞서 언급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결과는 만족. 정성을 들인 번역 탓인지 "혼징 살인사건"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없어지고, 몰입도는 더 높아진 것 같다. 긴다이치 탐정의 활약(살인사건을 하나도 막지 못했는데 무슨 활약...)도 볼만하고, 막판의 반전도 충격적이다. 이렇듯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사건의 측면 - 트릭이나 범인 - 은 조금 못마땅한 것이, 작가가 공정한 게임을 주장하면서도 교묘히 반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릭의 디테일이 조금 불완전한 면도 있고... 그러나 이번 여름의 끝을 장식한 괜찮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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