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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12. 14:55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 쓴 글)
[albook|small|right|8952748123|height=150]어제 오후에 책을 펼쳐 밤 깊은 시각에 덮었습니다. 원래 속독을 하는 편이나 중간중간에 여러번 다시 읽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1992

이 카페에서 처음 소개글을 접하고, 저 역시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하며 책이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기다림이었을까요? 해설에서 언급된, '서술 트릭이 가져다주는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착각'에 이르기 전에, 트릭의 구조를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반전이 기막히다는 이야기에 대해 그 결말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독자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가며 수수께끼를 풀어보려 하지요. 범인을 포함한 모든(?) 결말이 책의 첫 머리에 '에필로그(!)'로 제시된 이 책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대체 무슨 반전이 있는 것일까?

최근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을 몇 권 읽으며 감탄, 또는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기에 제가 더 심하게 텍스트를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묘사의 미묘한 이질감, 약간 의아한 어휘 선택 등... 물론 그 중에는 단순한 함정도 있고, 중요한 힌트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7장 정도에 이르러 모순점이 너무 심해지자 결국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과연, 역시 가장 결정적인 힌트는 아래 뚜벅이님이 다른 글의 댓글에서 언급하신, '30쪽 이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의 독서는, 글쎄요, 자신에게 후회스러웠다고나 할까요. 차라리 그냥 편히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러나 이어지는 가사이 기요시의 작품 해설은 그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상해줄 만큼 훌륭했습니다. 결국은 공개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트릭과 반전이 작품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남아있는 이 작품의 강한 인상은, (저에게는) 실패한 반전의 충격도, 잔인한 묘사도 아니라,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현대의 사회, 가정, 인간의 단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몽매한 평자로부터 자주 '몰사회적'이란 비난을 받은 아야츠지 이후의 현대 본격 작품에, 실제로는 80년대라는 시대의 병리적 징후가 필연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해설의 이 문장은 자칫 놓치기 쉬운 이 작품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더불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일군의 신본격 추리물들에 대한 저의 편견을 많이 누그러뜨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신본격, 아니 모든 추리 소설들이 그 시대적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S. 30쪽 안에 있다는 그 힌트, 번역하신 분의 고심이 엿보입니다. 일본 독자들은 그냥 단순한 오자로 봐 넘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