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 23:53
[일상/독서]
[albook|small|left|8901092964|width=100][albook|small|left|8901092972|width=100]<신세계에서>, 기시 유스케, 2008
(이 작가는 <유리망치>로 낯이 익습니다. 여러 장르를 섭렵한다는데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조금 가미된 SF입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한 소녀, 사키와 그녀의 친구들이 천 년 후의 세계에서 겪는 성장과 모험의 이야기라고 <신세계에서>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그건 정말 너무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축이 없었어도 저 같은 독자들이 두 권의 두꺼운 책을 밤새 손에서 떼지 못했을까 하는 건 좀 의문입니다. 참신한 설정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천 년 후의 평화롭지만 불안한 현실, 엄격히 통제되는 과거, 그리고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 주력, 악귀와 업마, 요괴쥐, 유사미노시로…… 사실 이런 것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사키라는 소녀가 이들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독자와 함께) 세계의 진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세계의 진실 중 몇 가지는 천 년 전에 살고 있는 저에게도 꽤 공감이 됩니다.
(이 그림은 한국어판 편집자님이 찾은 자료로, http://cafe.naver.com/mysteryjapan/10622에서 가져왔습니다.)
학교
학교는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거나 낙오된 아이들을 도태시킵니다. 그들은 남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지지요. 합격한 아이들은 강력한 세뇌와 암시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도록, 현실에 의문을 갖지 않도록 길들여집니다. 그러나 이런 걸러냄의 과정을 뚫고 기적적인 확률로 특별한 아이들이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하지요. 우리는 그들을…… 저는 지금 <신세계에서>의 독후감을 쓰다가 어제 치러진 일제고사를 거부한 소수의 학생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천 년 후의 신세계에서도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처분’하기 위한 수단을 고심하고 있더군요. ‘악귀’나 ‘업마’가 되어 세상을 파괴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하니까요. 악귀는 사이코패스의 다른 이름인 듯하지만, 업마는 무엇으로 이해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삼십 년쯤 전이었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운동권’이 가장 가까운 의미를 가졌을 텐데, 지금은…… 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
신세계에서 초능력(주력)을 구사하는 인간은 콜로니를 이루어 사는 요괴쥐들을 여러 가지 작업에 부립니다. 별별 변이생물들이 다 있으니 인간과 말이 통하는 요괴쥐도 놀랍지는 않습니다. 대략 삼천년 전부터 ‘말하는 도구’로 노예를 다뤄온 인간들인데다 부락민의 전통이 있었던 일본이거든요. (우리 나라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역사를 봐도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고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쉽게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주인공 사키는 누구보다 요괴쥐와 가까웠지만 – 목숨을 위협받은 만큼이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많았죠 – 그 보답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경계는 여전히 분명하니까요. 얼마 남지도 않은 인간들이 문명과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공동체는 그런 의미에서 내부로부터의 경계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 이류(異類)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주력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경계에 둘러쳐진 팔정표식처럼 말입니다.
희망
책을 읽은 후 제가 느끼는 ‘신세계’의 인상은 이 글의 제목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동시대의, 미래학자도 아닌 소설가가 그려낸 미래, 그것도 천 년 후의 세계에서 ‘예측’을 기대해선 안되지요. 그러나 우리는 역사가 어떤 면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천 년 동안 변한 것들 – 초능력, 새로운 존재들 – 보다는 천 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작가가 생각한 것들에 관심을 둡니다. 주력을 가진 인간을 둘러싼 불신과 공포, 복수, 전쟁, 세대간의 갈등과 이해,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질투, 희생과 헌신…… 이렇게 나열하자니 참 진부합니다만 이런 것들을 빼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성인이 된 사키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남깁니다. 그녀가 신세계에서 (from the new world)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기는 메시지 가운데 저는 인간만이 가져왔던 변치 않는, 그러나 근거 없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 세계를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아주 오래된 믿음입니다. 인간은 언제까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읽기 편한 책입니다. 소년 소녀들과 함께 신세계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모험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모험의 끝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도쿄 지하에서의 마지막 모험은 RPG 게임마냥 흥미진진하지요.
그러나 읽고 나면 한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수만 년 동안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가질 거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인간들 중 소수는 이미 그 비슷한 힘을 충분히 남용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답답해집니다.
지난 달에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서 출간 이벤트를 열었고, 고맙게도 당첨되어 책을 얻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천 년 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덧글로 달아서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제 덧글을 부끄럽지만 여기 옮겨 두겠습니다. 그 때 저는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작가는 <유리망치>로 낯이 익습니다. 여러 장르를 섭렵한다는데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조금 가미된 SF입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한 소녀, 사키와 그녀의 친구들이 천 년 후의 세계에서 겪는 성장과 모험의 이야기라고 <신세계에서>의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그건 정말 너무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축이 없었어도 저 같은 독자들이 두 권의 두꺼운 책을 밤새 손에서 떼지 못했을까 하는 건 좀 의문입니다. 참신한 설정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천 년 후의 평화롭지만 불안한 현실, 엄격히 통제되는 과거, 그리고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 주력, 악귀와 업마, 요괴쥐, 유사미노시로…… 사실 이런 것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사키라는 소녀가 이들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독자와 함께) 세계의 진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세계의 진실 중 몇 가지는 천 년 전에 살고 있는 저에게도 꽤 공감이 됩니다.
학교
학교는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거나 낙오된 아이들을 도태시킵니다. 그들은 남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지지요. 합격한 아이들은 강력한 세뇌와 암시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도록, 현실에 의문을 갖지 않도록 길들여집니다. 그러나 이런 걸러냄의 과정을 뚫고 기적적인 확률로 특별한 아이들이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하지요. 우리는 그들을…… 저는 지금 <신세계에서>의 독후감을 쓰다가 어제 치러진 일제고사를 거부한 소수의 학생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천 년 후의 신세계에서도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처분’하기 위한 수단을 고심하고 있더군요. ‘악귀’나 ‘업마’가 되어 세상을 파괴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하니까요. 악귀는 사이코패스의 다른 이름인 듯하지만, 업마는 무엇으로 이해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삼십 년쯤 전이었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운동권’이 가장 가까운 의미를 가졌을 텐데, 지금은…… 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
신세계에서 초능력(주력)을 구사하는 인간은 콜로니를 이루어 사는 요괴쥐들을 여러 가지 작업에 부립니다. 별별 변이생물들이 다 있으니 인간과 말이 통하는 요괴쥐도 놀랍지는 않습니다. 대략 삼천년 전부터 ‘말하는 도구’로 노예를 다뤄온 인간들인데다 부락민의 전통이 있었던 일본이거든요. (우리 나라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역사를 봐도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고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쉽게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주인공 사키는 누구보다 요괴쥐와 가까웠지만 – 목숨을 위협받은 만큼이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많았죠 – 그 보답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경계는 여전히 분명하니까요. 얼마 남지도 않은 인간들이 문명과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공동체는 그런 의미에서 내부로부터의 경계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 이류(異類)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주력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경계에 둘러쳐진 팔정표식처럼 말입니다.
희망
책을 읽은 후 제가 느끼는 ‘신세계’의 인상은 이 글의 제목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동시대의, 미래학자도 아닌 소설가가 그려낸 미래, 그것도 천 년 후의 세계에서 ‘예측’을 기대해선 안되지요. 그러나 우리는 역사가 어떤 면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천 년 동안 변한 것들 – 초능력, 새로운 존재들 – 보다는 천 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작가가 생각한 것들에 관심을 둡니다. 주력을 가진 인간을 둘러싼 불신과 공포, 복수, 전쟁, 세대간의 갈등과 이해,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질투, 희생과 헌신…… 이렇게 나열하자니 참 진부합니다만 이런 것들을 빼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성인이 된 사키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남깁니다. 그녀가 신세계에서 (from the new world)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기는 메시지 가운데 저는 인간만이 가져왔던 변치 않는, 그러나 근거 없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 세계를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아주 오래된 믿음입니다. 인간은 언제까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읽기 편한 책입니다. 소년 소녀들과 함께 신세계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모험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모험의 끝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도쿄 지하에서의 마지막 모험은 RPG 게임마냥 흥미진진하지요.
그러나 읽고 나면 한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수만 년 동안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가질 거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인간들 중 소수는 이미 그 비슷한 힘을 충분히 남용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답답해집니다.
* * *
지난 달에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서 출간 이벤트를 열었고, 고맙게도 당첨되어 책을 얻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천 년 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덧글로 달아서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제 덧글을 부끄럽지만 여기 옮겨 두겠습니다. 그 때 저는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큰 기대는 안하지만, 인간에 대한 각각의 정의(definition)들을 가지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여러 가지 모습의 공동체들이
공존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 추구가 합리적인 삶의 목적인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경쟁하고, XX 신을
모시고 헌신하며 살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계명을 지키며 예배드리고,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서로 위아래를 따지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서로 잡아먹고... 그리고 어린이들은
폭력과 강요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나 과거 천 년이란 시간동안 인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그리고 이 좁은 지구를 생각해 보면 저의 꿈은 몽상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과거 천 년이란 시간동안 인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그리고 이 좁은 지구를 생각해 보면 저의 꿈은 몽상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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