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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에 해당되는 글 4건
2008. 8. 26. 20:04
<악의惡意>는 카페 이벤트 낙첨 기념으로 당장 사서 읽었습니다. 인기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로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냄새를 풍기는 도입부와 사건 발생까지는 즐겁게 지나갔는데...
이런, 책 분량의 3/4이 남았는데 범인이 나와버리면 어쩌라구요!
그러나 반전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인 만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제 문제는 살인의 동기입니다. <붉은 손가락>에서 만났던 가가 형사의 집요한 추리가 빛날 시간이죠.

*       *       *

책을 덮고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1. 추리소설에서 제목이 아주 큰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것. 감히 얘기하건대, 이 살인의 동기는 '악의' 그 자체예요.
2. 물리적 트릭보다 심리적 트릭이 훨씬 어렵다는 것. "기계적인 밀실은 깨뜨릴 수 있어도 심리적인 밀실은 깨뜨리기 어렵다"(문신살인사건)는 말처럼, 다른 트릭은 눈치챌 수 있어도 선입견은 지우기 어려웠어요. 가가 형사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그것'은 이 소설 최고의 트릭이었습니다.
3. 이 소설이 다루는 사회적 이슈를 굳이 얘기하자면 '학교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폭력의 근원이 되는 악의('맘에 안든다')는 대체 무엇이길래 해결책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솔 직히 얘기하자면 후반부의 탐문 케이스 1~10은 좀 지루했어요. 물론 독자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이른바 '반전'을 눈치채고 놀라게 되겠지만, 여러 인물들의 얘기가 산만했기 때문인지 결말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충격이 약한 편이었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예전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이 비슷한 구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띠지에도 "<용의자 X의 헌신>을 능가하는 감동과 반전"이라고 써 놓았군요. 그래서 한 번 비교해 보았지요.

 악의 (1996)
용의자 X의 헌신 (2005)
탐정가가 형사
유가와 교수
범인초반에 밝혀짐
처음부터 밝힘
트릭살해 동기 조작
알리바이 조작
트릭의 도구
범인의 수기
또다른 시체
고정관념가해자와 피해자의 성품
가해자-피해자의 구도
반전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가해자-피해자의 새 구도
감동 코드
선의
헌신과 희생

대충 만든 표라 좀 엉성하지만, 어떤가요? 그럴듯하지 않나요?

전모가 이미 드러난 것 같은 사건을 두고 범인이 쳐 놓은 이중삼중의 덫을 풀어내는 형사와 탐정,
그 반대편에서 범행 자체가 아니라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범인,
그리고 작가의 치밀한 트릭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다가 끝에서야 의외의 진실(반전)에 놀라는 독자.

차이점으로는 악의적인 트릭과 헌신(희생)적인 트릭의 강한 대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악의>에서는 트릭과 감동 코드(이건 좀 좋은 표현이 아니지만요)가 서로 대척점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감동이 덜했던 반면,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그 둘이 한 인물 속에 통합된 까닭에 가슴 찡한 느낌이 더 강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글 제목을 '대칭성'이라고 달았군요. 결론이라면, 일단 저는 둘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을 미리 얘기해 두고요.
형 식적으로 두 작품은 공통의 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실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요. 약간의 불편한 점이 있는 <악의>란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용의자 X의 헌신>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이런 작품이 몇몇 있다고 하던데...)

어쨌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비결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 그리고 독자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 작가만 보고 믿고 살 수 있는 책은 정말 드물거든요.

[albook|small|left|8972754196|height=150][albook|small|left|8972753696|height=150]
2008. 7. 25. 16:57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 '느린시간'이란 닉네임으로 남겼던 글과 댓글을 재활용하여, 올해 읽은 일본 추리소설 신간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봅니다. (책을 읽은 분들만을 위한, 불친절하고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랍니다.)

[albook|small|right|8925518651|width=100]<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대전으로 돌아오니 "0교시, 우열반 자율화" 같은 뉴스들만 기다리고 있네요.
회랑정 살인사건의 교훈도 그런 것이었지요. 부모를 잘 만나든지, 얼굴이라도 잘 생기든지.
그러나 우리 딸은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아닌가?

바란

"내가 어때서!"


("벚꽃지는 계절에 엄마는 딸에게 헤드락을 거네"에서 - 비공개 설정)

[albook|small|right|8952750624|width=100]<외딴섬 퍼즐>, 아리스가와 아리스

에가미 선배는 직소 조각의 산을 파헤치더니 분류를 시작했다. (......) 조각을 맞추려고 하지는 않고 그저 뱀을 이루는 조각들을 모으고만 있다.
"흐음, 기본을 이해하고 있구먼."
의사는 에가미 선배의 작업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이 방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에가미 선배의 말에 소노베는 빙긋 웃었다.

<월광게임>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각 장의 제목 - 밀실 퍼즐, 자전거 퍼즐, 모아이 퍼즐, 자살 퍼즐, 직소 퍼즐 - 처럼 아기자기한 트릭들이 흥미로웠고, 풋풋한 주인공들의 청춘(!)도 남쪽 바다 작은 섬에 잘 어울렸습니다.

독자에 대한 도전을 마주하고 저는 솔직히 범인을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머리가 굳은 건지, 지나치게 많은 힌트들에 집중력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가미 선배의 추리와 더불어 범인이 밝혀지고 나니 조금만 더 생각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뭐, 늘 그렇지만요.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밖의 수수께끼 - 범행의 동기나 방법, 밀실 트릭, 다잉 메시지 등 - 는 범인이 고백하기 전에는 추측만 가능한 것들입니다. 알찬 '퍼즐 북'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주인공 커플의 데이트와 보물찾기 같은 건 추리의 대상이 아니라도 언제나 재미있는 읽을거리니까 괜찮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대화는 책의 초반부에 나옵니다. 에가미 선배는 비슷한 방법으로 뱀이 아니라 사건을 이루는 힌트 조각들을 모아 범인을 맞춥니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없다'는 그의 차가운 지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범인을 도출해 내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말을 이끌어 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궁지에 몰린 범인이 으레 저지르는 행동 - 범행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탐정의 추리에 장단 맞추기 - 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슬프군요.

("<외딴섬 퍼즐>을 푸는 한 가지 방법, 그리고 번역 실수"에서)
 
[albook|small|right|8901083388|width=100]<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최근에 <제3의 시효> 관련 글에서 소설의 내용이 만화책 <강력1반>의 2권으로 나와 있다는 얘길 듣고 검색해보니 새 책은 절판이고 중고는 때맞춰 한 질(1-4권) 있더군요. 사는김에 <절대미각 식탐정> 1-8권도 같이... (이건 절판은 아니지만 싼맛에)

강력1반 만화책

<강력1반>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흡인력 있는 스토리 + 깔끔한 성인만화 그림체입니다.
특히나 고독한 야수들이 모인 강력반 조직 내부의 갈등이 사건에 깔려 있어 더 흥미롭네요. 2권 "제3의 시효"는 결말이 여운을 남기고 있고, 1권 "침묵의 알리바이", 3권 "밀실의 구멍", 4권 "죄수의 딜레마" 모두 원작의 힘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강력1반 시리즈도 계속 출간된다죠?
다만 결말을 이렇게 다 알아버려서... 전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보겠습니다. ^^

("중고 만화 <강력1반>, <절대미각 식탐정>"에서)

[albook|small|right|8991684475|width=100]<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며칠 전, 동네 서점에서 제목이 가물가물한 책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의 이해>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있나요?"
아저씨는 '도법의 이해'로 검색하시더니 고개를 젓고... (그게 뭔 지도책이여?)
알고보니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었다죠.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공부를 너무 많이 했나봅니다. 아직도 UTM을 기억하고 있다니...
결국 인터넷으로 사서 다 읽은 기념으로 고백합니다.

('한 마디' 게시판에서)

느린시간: "오퍼런트의 초상"은 이퀼리브리엄(영화) 같이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데 제게는 그것이 <1984>였습니다. "끔찍한 열대"에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하신 분들도 꽤 있겠죠?

(구름이님이 쓴 "히라야마 유메아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댓글)

[albook|small|right|890108371X|width=100]<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의 세번째 단편 "비할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다잉메시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잉메시지가 나오죠. 이 글은 그 첫번째에 대한 사소한 정보와 감상입니다.

피해자의 강력한 소망을 담고 있는 첫번째 다잉메시지는 겐지 향(香) 기호인지라 우리 나라 독자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위키 백과가 제일이죠. '香の図' 항목에 다음 기호 일람표가 나옵니다.
겐지 향 기호표

©Wikipedia


52가지 기호를 겐지이야기(源氏物語)의 권 제목들로 이름붙였다고 합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읽어보니, 아하! 이건 5가지 향기를 구별해내는 게임에서 답을 표시하는 방법 - 일종의 OMR 카드 기입법 - 이었군요.

그러니까, 출제자가 5가지 종류의 향목(香木)들 25개를 섞어서 5개를 골라냅니다. 그럼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하나씩 향기를 맡고 서로 같은 것을 줄을 이어 표시하는 거죠. 하쓰네(初音)는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2번과 4번이 같은 향이고, 3번과 5번도 같은 향이란 의미인 듯합니다. 13번 아카시(明石)는 5개 중 3,4번만 같다는 뜻이겠죠.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정확히 52가지가 있군요. 어쨌든 꽤나 호사스런 놀이인 건 분명합니다.

살인자를 표시하는 이 다잉메시지의 특이한 점이라면 전달의 대상(단 한사람)과 전달의 목적(복수!)인데 그런 이중적인 구조가 제게는 정말 참신했습니다. <월광게임>에서의 그 불량품 다잉메시지에 너무 실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책 147쪽에 그려진 '아카시'가 (밟혔다는 구실로) '1011'로 보이게 꼬아 놓은 정도는 그냥 넘어가렵니다.

번거롭긴 했지만 이렇게 찾다 보니 이 단편이 조금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제가 아직 <X의 비극>을 읽지 않았다는 거죠. 이걸 어떻게 구해 본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의 다잉메시지 (스포 잔뜩)"에서)

2007. 7. 25. 03:46
[albook|small|right|8979197683|]방과후, 히가시노 게이고, 1985
(표지가 예쁘다. 지난 번 읽은 <숙명>처럼, 읽고 나면 '아하!'하게 되는 표지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동네 서점에 나오자마자 샀다. 우리 가족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 <방과후>를.

배경은 여고, 주인공은 남자 선생님, 그렇고 그런 인간관계들...
어떻게 보면 참 평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학교에서 사람들이 잇달아 죽어가는 이야기는 (많이 읽어 본 적은 없지만) 흔할 것 같다. 게다가 학생이라면 학교는 누군가를 죽일만큼 미워할 이유가 많이 생기는 곳이니까. 그런 긴장감이 가득한 학교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 방과후와 축제라는 느슨한 순간에 독살이 일어난다.

다 읽고 나서, 다른 추리소설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단 두 가지 질문만이 머리 속에 맴돈다.

정말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동기(왜?)와 트릭(어떻게?), 그것은 추리소설이 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이 소설, <방과후>만큼 그것을 도전적으로 제시하는 작품도 드물다. 왜냐면, 이 이야기에서의 동기와 트릭은 정말로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인정할 뿐이다. 또한 첫번째 살인 트릭은 (이중으로) 매우 정교하고 수준이 높지만, 두 건의 살인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구조에서 보면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니, 정황상 믿기지 않는다고 할까. 그렇다. 나는 이런 살인 사건이 학교에서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고등학교 시절, '방과후'란 것은 없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운동, 취미 등의 활동을 하는 시간이라...

요즘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중노동이다보니 다른 일은 아무 것도 못해야 정상이겠지만, 여전히 소설책만은 읽어대고 있다. 대신 잠이 부족할 뿐. 역시 '방과후'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다. 꼭 지키고 싶은.
2007. 5. 31. 21:37

[albook|small|right|8979197667|]숙명宿命, [wp.ja:東野圭吾]히가시노 게이고[/wp], 1990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 쓴 글)

추리소설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인 '의외성'을 살리기 위해 작가들은 고심합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 <숙명>에서 기발한 트릭이 아니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비밀을 통해 자신만의 의외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사건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그 인과관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안개 속으로 거슬러가야 합니다. 이런 일에는 동기가 필요하죠. 주인공에게는 어렸을 적 자신과 친했던 여인의 죽음, 알 수 없는 이유로 형사였던 아버지가 그 수사를 중단해버린 일, '끈'에 이끌린 듯한 첫사랑의 인생 궤도, 형사와 용의자로 다시 만나게 되는 학창시절의 맞수 같은 강력한 운명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시간이 마련해 놓은 이 무대에서 그가 발견하는 진실은,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 곧 숙명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여인의 죽음이 아련한 추억처럼 그려진 서장을 읽고 나면, 독자는 느닷없이 한 기업 사장의 임종을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읽다보면 모든게 다 엮이지만요. 다만, 본격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너무 뜸을 들인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작가의 장점 중 하나가 간결한 이야기 진행이라 좀 민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불안한 가족관계가 묘사됩니다. 그 와중에 다른 가문 출신의 후임 사장이 살해당하고, 과거의 첫사랑과 결혼한 라이벌을 만나게 된 주인공은 수사를 구실삼아 자신만의 동기에서 숨겨진 진실 속으로 파고듭니다. 읽고나서 보니 이런 모습은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비극의 주인공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네요. <숙명>의 주인공은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요?

오래 지속되는 반전

매체를 가리지않고 남발되는 '반전' 탓에 독자들의 요구 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 - 반전 - 은 제 경험에서 비교해보자면, <벚꽃지는 계절에...>나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책을 처음부터 다시 펴들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구성상의 트릭이 아니니까요. 대신, 공감하기 힘들었던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이런 느낌은 책을 덮고 나서 한참동안 내용을 되새겨볼 때 비로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의 반전은 큰 파도보다는 잔잔한 파문에 가깝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이 소설의 핵심적인 반전은 딱 네 단어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꽤 놀랍습니다만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면 그 이상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추억, 사랑, 좌절, 충격, 속죄, 결심 같은 것들이 주인공들의 행동에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알리바이 조작과 흉기의 비밀, 그리고 작가의 후속작들에서 계속해서 다뤄질 '뇌'의 모티브가 무대 장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이번엔 제가 먼저 읽어버렸는데, 아내에게 이 소설은 (영화로 본)<비밀>, <호숫가 살인사건>, <용의자X의 헌신>만큼 재미있을까요? 간결한 묘사와 결말의 반전이란 그만의 스타일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부족한 부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점이 이 소설을 즐기는 데 큰 어려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가가 심리 묘사에 약하다는 말도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어느 누가 환히 들여다 볼 수 있겠습니까? 급박한 반전으로 끝나는 이야기일수록 독자에게 더 많은 몫이 주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 마지막 줄의 한 단어에 주목해 봅니다. '어떤 것'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작가의 스타일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숙명'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가장 큰 스포일러는 제목입니다. (거기다 표지까지...)

P.S. 하룻밤만에 다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의 팬이라면 꼭 읽어볼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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