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더 새롭고 보기 편해진 그의 신작과 만난다!!"인데, 여기서 '보기 편해진' 매우 중요하다. 어떤 독자는 BLAME!의 난해함이 후속편(프리퀄?)인 <NOISE>로 대부분 해소되었다고도 하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바이오메가의 '친절한' 서술 방식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에게 고마울 뿐이다.
거대한 구조물과 기괴한 생명체의 묘사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BLAME!과 다른 점이라면 아직까진 '하늘'이 보인다는 사실 정도? 폭주하는 오염된 세상에서 주인공의 모험은 BLAME!의 연장선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몇 가지 사소한 특징:
1.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 (특히 3권 표지!) - BLAME!에는 시보 주임 말고 그런 존재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
2. 가끔씩 허무하게 처리되는(죽어버리는) 적 - 잔뜩 힘주고 나타나서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허탈한 경우들이... 디자인이 아깝지도 않나.
3. 유머 코드 - 예: "그냥 벌꿀은 별로라..."
그리고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하게 난무하는 설정에 맞춰 역시 이번에도 용어 사전이 등장했다. 일본어 위키를 Ratatosk님이 번역했는데, 몇 번을 읽었지만 빠뜨리기 쉬운 부분들을 채워넣고 복습하기에 좋다. 대부분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기도 하니까.
Ratatosk's Tree - 바이오메가 위키번역
PS. 작가의 단편 <아바라 Abara> 상하권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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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라오의 목걸이/인간 폭죽
컬래버레이션 기획이라던 '파라오의 목걸이'는 CMB 6권을 봐야 완전한 평가가 가능할 듯. 지금으로서는 용두사미 격인 에피소드. 반면, '인간 폭죽'은 (대충 붙인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충격적인 그림에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면 공통의 주제를 찾을 수 있는데...
참고: 구상시회권과 마카브르... (오른쪽 그림도 여기서 퍼왔습니다.)
'인간 폭죽' 편의 소재입니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이 아니라 예술의 아이디어를 얻는 사람이 나옵니다.
3. 투포비라우스키 증후군 또는 이름 붙이기
"나는 손에 넣었어!! 생명을 넘어서는 힘을···. 나만이···!!"
"네가 특별한 게 아니야. 전형적인 증상이지."어둠을 봉하고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주문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4. 결론: 말의 힘
'파라오의 목걸이'에서,
과학은 분명 유사 과학을 두들길 힘을 가지고 있어. 어디가 잘못됐고 무엇이 옳은지를 설명할 힘 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말은···, 이미 잃었다구.'인간 폭죽'에서,
"어둠을 죽이려면 이름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 어둠은 어둠이 아니게 되죠."그러나 주인공 토마의 '이름 짓기'가 헤쳐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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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ook|small|right|895299664X|width=150]Q.E.D. 증명종료, 가토 모토히로, 1997~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추리만화 <Q.E.D. 증명종료>를 속속들이 파헤치는 작업을 끝냈습니다. 현재 26권까지 번역판이 나왔고 에피소드가 50개를 넘은 지금이 괜찮은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권 수가 많이 나가는 만화책은 잘 사지 않지만 이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사 모을 것 같네요.
Q.E.D. 증명종료 (Q.E.D. 証明終了)
작가: 가토 모토히로 (加藤元浩)
연재: 1997년부터 <월간 소년 매거진> 증간호 <매거진 GREAT>에 격월간 연재 중
번역판: 학산문화사, 1999년3월 1권 발행, 2007년3월 26권 발행
역자: 최윤희(1~8권), 최윤정(9~), 동일인?
등장인물: 토마 소, 미즈하라 가나
내용
10권을 제외하면 한 권에 두 개씩의 에피소드(A, B)가 있음. 괄호 안 숫자는 사망자 수.
1권
A 미네르바의 올빼미 – 게임회사 사장 살인사건(2), 시간 트릭, 트럼프, 미네르바의 올빼미
B 은빛 눈동자 – 인형관 살인사건(1), 등신대 인형, 세 명의 엇갈린 증언, 라이덴 병
2권
A 로쿠부의 보물 – 보물찾기 살인사건(2), 로쿠부 살인 전설, 지장관음상, 보물지도
B 로스트 로얄 – 자동차 찾기, 부가티 로얄, 7번째 로얄, 숨겨진 공간
3권
A 브레이크 스루 – 토마의 MIT 시절, 로키와 에바, 수수께끼
B 빛바랜 성도 – 천문대 살인사건(1+1+1), 망원경 운행, 시리우스, 오해가 낳은 슬픈 이야기
4권
A 1st, April, 1999 – 만우절, 정부개발원조(ODA), 모노폴 (자기단극자)
B 야곱의 사다리 – 인공생명, 시뮬레이션
5권
A 일그러진 선율 – 첼리스트의 살인(1), 코다이 무반주 첼로소나타, 변칙조율, 시체 은닉
B 빛의 잔상 – 결핵 요양소 벽에 매장된 사체(1), 밀실 트릭, 천리안, 바늘구멍 카메라
6권
A 나의 기억···. – 토마 여동생 유우, 기억 찾기, 수국의 색깔
B 푸른 밀실 – 스카이다이빙 살인사건(1+1), 낙하산 MALFUNC, 밀실 트릭
7권
A Serial John Doe – MIT 졸업생 연쇄살인사건(3), 오일러의 공식 (e^πi=-1)
B 우울한 오후 – 꽃집 월급 도난사건, 파피오페딜럼 (Paphiopedilum)
8권
A 폴링 다운 – 번지점프대 살인사건(1+1), 소방학교, 고소공포증
B 학원제 소동 – 학원제를 준비하는 네 팀의 상호 보복, 거짓말과 착각
9권
A 게임의 법칙 – 대부호가 낸 게임의 의미, 경우의 수, 다이아몬드 찾기
B 얼어붙은 철퇴 – 도개교 틈의 시체(1), 밀실 트릭,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강의 원류, 재회
10권
마녀의 손 안에 – 세일럼 저택의 살인사건(1), MIT의 토마와 어니 클레이너 검사, 총기 트릭, 세일럼의 마녀사냥
11권
A 추억의 바다 – 바닷가 살인사건(1+1), 과거의 진실, 익명의 편지, 알리바이 트릭
B 겨울 동물원 – 동물원 살인사건(1+1), 추리소설가 유령, 트릭 아이디어, 흉기 처리, 시선 트릭
12권
A 은하의 한구석에서 – UFO 그림 도난사건, 트렁크 트릭, 브리하트카타, 존바르 분기점
B 무지개 거울 – 10권의 속편, 재판 관계인 연쇄살인사건(2+1), 토마의 누명, 즐거웠던 추억
13권
A 재난의 사나이 – 렘브란트 작품 회수, 알렌 소프트, 선적국, 편의치적국
B 클라인의 탑 – 황천탑 살인사건(1), 위장 자살, 알리바이 트릭, 클라인의 병
14권
A 여름방학 사건 – 여름방학 학교에서의 네 가지 사건, 알리바이 트릭
B 불규칙 바운드 – 정치인 자가용 비행기 상해사건, 알리바이 트릭, 오컴의 면도날, 뜻밖의 결말
15권
A 유리의 방 – 오디오 애호가 살인사건(1), 밀실 트릭, 진공관, 할아버지의 선물
B 데데킨트의 절단 – 노교수를 괴롭히는 제자, 기억장애, 갈로아의 불행, 데데킨트의 절단
16권
A 벚나무 아래서 – 서류 분실사건, 벚꽃 구경, 형광등 켜기, 잃어버린 반지, 형태가 없는 것
B 죽은 자의 눈물 – 송어양식장 부인 살인사건(1), 시체 은닉, 토마의 도박
17권
A 재난의 사나이의 재난 – 리조트 도난사건, 알렌 소프트, 이공계 차별대우, 공범
B 까마중 – 영화 촬영 살인사건(2), 흉기 소품 바꿔치기, 밀실 트릭, 타이머 트릭, 영화의 진실
18권
A 명탐정’들’ 등장! – 고교 탐정동호회의 사건, 밀실 트릭, 공진
B 세 마리의 새 – 과거의 동반자살의 진상(1+1), 보험금, 착각과 기억, 동화
19권
A 맥베스의 망령 – 맥베스 연극배우 살인사건(1), 회전 무대, 시체 운반 트릭
B 현자의 유산 – 가나의 1920년대 시간여행, 숨겨진 유산, 보색, 시선의 위치
20권
A 무한의 달 – 상하이 마피아 순환살인사건(4+1), 칸토르의 무한연속체가설, 공집합과 죽음
B 다망한 에나리 씨 – 탐정동호회 회장 할머니의 비밀, 할머니의 연락 방법
21권
A 이어진 끈 – 눈보라 속 별장 살인사건(2), 밀실 트릭
B 표적이 된 미녀 배우, 스토커의 공포, 절벽에 울린 총성, 토마와 가나는 보고 있었다 – 삼류 형사의 낭만
22권
A 봄의 개울 – 기억을 상실한 일본화가(1+1), 소중한 장소, 반전
B 베네치아 미궁 – 알렌 소프트 회장 납치사건, 베네치아, 청혼
23권
A 라이어 – 바다 위 크루저 살인사건(1), 모두의 범행과 알리바이, 거짓 증언, 토마의 사촌
B 어나더 월드 – 리만 가설에 도전한 수학자, 제타 함수, 4색 문제, 스큐즈 (Skewes) 수, 사행시
24권
A 크리스마스 이브 이브 – 노래방에서 생긴 사건들, 연말 분위기, 한자와 가나
B 죄와 벌 – 완전범죄의 계획과 실행(1), 피해자와 가해자, 절도범과 살인범
25권
A 우주 대전쟁 – 탐정동호회 탈환작전, 우주인, 감열지
B Parallel – 논문 관련자 살인사건(3+1), 초끈 이론, 싱크로트론, 논문 조작, 다중세계해석
26권
A 여름의 타임 캡슐 – 가나의 보물상자, 선물, 기억
B 공범자 – 레스토랑 살인사건(1), 밀실 트릭, 뜻밖의 공범자
분류와 통계
총 51개 에피소드 중에서,
본격 추리 (35편, 68.6%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찾는 이야기)
살인 (27편) 1A, 1B, 2A, 3B, 5A, 5B, 6B, 7A, 8A, 9B, 10, 11A, 11B, 12B, 13B, 15A, 16B, 17B, 18B, 19A, 20A, 21A, 22A, 23A, 24B, 25B, 26B
절도 (4편) 2B, 7B, 12A, 17A
기타 (4편) 4B, 13A, 14B, 21B
일상의 수수께끼 (16편, 31.4% 범죄와 관련 없는 사건의 비밀과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
학교 (5편) 8B, 14A, 16A, 18A, 25A
기억 (4편) 3A, 6A, 15B, 26A
기타 (7편) 4A, 9A, 19B, 20B, 22B, 23B, 24A
범인의 죽음 (8편)
자살 (5편) 3B, 8A, 11B, 12B, 25B
기타 (3편) 18B, 20A, 22A
살인사건 27개 에피소드 중에서,
사건과 관계된 죽음: 50명 사망, 평균 50/27=1.85명/회
범인의 계획된 살인: 39명 사망, 평균 39/27=1.44명/회
범인의 사망률과 자살률: 8/27=29.6%, 5/27=18.5%
4권과 14권에는 살인사건이 없음.
수학 관련 소재 (6)
7A 오일러의 공식, 9B 한붓 그리기, 13B 클라인의 병, 15B 데데킨트의 절단, 20A 무한집합, 23B 리만 가설
과학 관련 소재 (6)
1B 라이덴 병, 3B 천문 관측, 4A 모노폴, 4B 인공생명, 5B 바늘구멍 사진기, 25B 초끈 이론
감상과 비평
9B 얼어붙은 철퇴 – 천재는 자신이 봉인한 범죄가 풀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25B Parellel – 연구 비리에 대한 섬찟한 고발, 황우석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가장 웃긴 에피소드: 8B 학원제 소동 – 시끌벅적한 학원제 전야의 해프닝
가장 따뜻한 에피소드: 20B 다망한 에나리 씨 – "내게 있어, 난 나란다."
가장 슬픈 에피소드: 3B 빛바랜 성도 – 헌신적인 사랑의 너무나 추운 결말
가장 놀라운 에피소드: 22A 봄의 개울 – 영화로 만들만한 반전
가장 엉뚱한 에피소드: 19B 현자의 유산 – 시간여행을 가서도 토마를 만나?
기억나는 한마디
"'뭔가' 알았다면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모든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진실’이 나타나죠." – 15A 유리의 방
덧붙여,
분류와 통계를 보시면 알겠지만 Q.E.D. 역시 살인사건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나 한 사건당 평균 두 명도 채 죽지 않는 건 김전일 군의 경우와는 확실히 다르죠?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에 관련된 얘기가 꽤 많이 나올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군요. 특이한 소재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 넣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요.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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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고난 뒤라 감상이 정리가 덜 됐지만...
[albook|small|right|8925212331|]라이드백 7권
어쩔 수 없이 6권부터 다시 봤습니다. 아, 놀라워요. 그동안 깔아놨던 복선을 완전히 다 터뜨립니다.
속표지의 번외편 히시다 극장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군요.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리려는 건 대체 뭘까요? 라이드백, 미래 세계, 뭐 이런건 확실히 아닌 듯하군요.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이란 무대는 화려하기도 하지만 외롭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예고편에 따르면, 8권부터는 주역이 바뀐다는데...
최근에 읽은 만화 중 가장 충격이 큽니다.
이건 헤살이 될 가능성은 없지만 조금 놀라운, 마지막 페이지의 8권 예고입니다.
[albook|small|right|8925212161|width=100]건스미스캣츠버스트 3권
마찬가지로 2권부터. 사이코 경감의 등장으로 빈에게 위기가...는 아니고, 빈은 이런 위협을 즐기고 있으니.
3권의 주인공은 아메리칸 V8과 RPG-7입니다. 권총은 어디로 가버렸나...
레이스를 구실삼아 오랫만에 '립 랩'도 등장하네요. (얼굴에 별 그린 운송업자)
어쨌든 빈은 불사신이에요. RPG 쯤은 맨손으로... (말도 안돼!)
[albook|small|right|8952995465|width=100]그=그녀 1,2권
"정글은 언제나..."의 그 어린 소녀 작가가 이젠 본격 순정(?)코미디(?)물을 그리네요.
두 권을 보면서 계속 낄낄거렸습니다. "정글.."의 아우라가 너무 강했는지 성인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하레와 구우 등등을 가끔 발견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보니 피도 안 섞인 입양아를 기르게 된, 여장을 하고 엄마 역할을 하는 한 남자의 얘기입니다.
회사에선 독신남, 집에선 싱글맘, 남자로써 이성에 대한 인기는 최저, 여자로써는 인기폭발, ...
현실성은 제로지만 가끔씩 찐한 키스씬(누구와 누구가?)에 깜짝깜짝.
주인공은 남자(아빠)로의 커밍아웃이 아니라, 복장도착자로의 커밍아웃이 유력한 상황이랍니다. ^^;;;
[albook|small|right|8952997751|width=100]강철의 연금술사 16권
암스트롱 소령의 누나(!)가 나온다는 것 빼곤 그냥 징검다리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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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미륵의 손바닥"이고, 다른 한 권은 오늘 다 읽은 이 책이다.
[albook|small|left|8949702894|]문신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1948
(내용과는 무관하게 표지가 왜 이모양인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미륵의 손바닥"이 2005년에 나왔으니 일본 추리소설의 할아버지와 손자쯤 되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조금도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며, 본격(머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과 변격(변태적 심리와 공포)의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미스터리 순위(문예춘추, 1986) 10위에 오를 만한 작품이다.
때는 1946년, 문신사의 삼남매 중 한 명인, 몸에 문신을 새긴 한 여자의 머리와 팔다리만 밀실에서 발견된다.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하고 밀실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 가운데, 그녀의 정부(情夫) 역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의 진실에 접근한 그녀의 오빠도 문신을 새긴 몸가죽이 벗겨진 채 살해된다. - 사건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거리가 가득하지만, 도입부를 제외하면 분위기나 심리 묘사로 흐르지 않고 수사 진행을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후반부에 추리소설 팬에게는 익숙한, '독자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도 포함해서.
결말에서 밀실살인이라는, 추리소설에서 상식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은 이 소설의 백미에 해당한다. - "기계적인 밀실은 무너지더라도 심리적인 밀실은 깨뜨리기 힘듭니다." - 독자 입장에서 사건이 제시하는 많은 수수께끼를 풀 가망은 거의 없지만, 머리를 많이 쓰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 소설에서 문신사의 세 남매는 온몸에 각각 세 가지 문신을 가지고 있다.
쌍둥이 언니: 오로치마루(大蛇丸) - 구렁이로 둔갑한 요술사
쌍둥이 동생: 쓰나데히메(綱手姬) - 민달팽이로 둔갑한 요술사
그리고 셋 사이의 관계는, 가위 바위 보처럼, 두꺼비가 민달팽이를, 민달팽이는 구렁이를, 구렁이는 두꺼비를 이기는, 이른바 3자 견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이름들, 아주 낯이 익다.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으로 인기가 많은 나루토 19권 표지와 그 안의 한 페이지를 보자.
전설의 세 닌자라 불리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오른쪽 페이지는 위에서부터,
오로치마루: 이무기 蟒蛇 (이무기 망, 뱀 사)
쓰나데히메: 민달팽이 蛞蝓 (괄태충 활, 달팽이 유)
이다. (한자 찾아 쓰느라 고생 좀 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동물을 소환하여 부린다.
나루토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서 만나니 나름 반갑다. 찾아보니, 이 이야기는 宋나라때 나온 "해사(諧史)"에 바탕을 두고, 일본으로 흘러가 에도시대 말기에 "지라이야 호걸이야기(児雷也豪傑譚話)"라는 책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출처: http://www.kamejiro.net/cgi-bin/sibai/11.html)
추리소설 독후감이 최신 만화책으로 흘러버렸다. 이런 것이 오래된 고전의 매력이라면 매력.
참고로, 나루토의 주인공(만화책 표지 한가운데) 이름은 우즈마키 나루토, 소용돌이 어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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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코믹스톰에서, 그리고 코믹114(중고만화책)에서...
일단 재밌게 읽은 책은,
[albook|small|left|895274781X|]점성술 살인사건
흥미진진하고 엽기적인 일본 추리소설입니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트릭이 너무 많이 알려진 추리소설'이라는 얘기가 있다는데요, 저 역시 읽고 들은 게 많아서인지 대충 감이 잡히더라구요.
가장 중요한 트릭이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아예 그대로 나왔다면서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가볍게 다뤘던 Q.E.D., 탐정학원Q에서였고, "이야기 파라독스"에는 자세히 소개되지요. 더 이상은 침묵. (아내가 지금 읽고 있는 중이라서...)
1980년에 출판되어 신본격의 시초라고 일컬어진다는데, 제가 읽은 신본격이라고 해봤자 십각관, 시계관, 그리고 "모든 것이 F가 된다" 정도라... (아, 만화로 나온 "월관의 살인"도 있다!) 어쨌든 기대했던 만큼 - '모든' 사건과 단서들이 결말과 트릭의 풀이를 향해 정교하게 짜인 구조물 - 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밌습니다. 다만 탐정이 좀 불친절하네요.
[albook|small|right|8991643159|]뿌리 깊은 나무 1,2권
한국형 팩션이랄까요. 겉모습은 그렇습니다. 띠지에 나온 대로 "장미의 이름"과 "다빈치 코드"를 벤치마킹한 듯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대신 가상의 책 "고군통서", 다빈치의 그림 대신 한글을 대입하면 세종대왕 시대의 궁궐을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이런 해석은 그야말로 '낚인' 겁니다. 이 책은 아주 정치적이에요. (XX일보가 이 책을 추천한다는 건 기자가 책을 읽지도 않았다는 얘기.) 배달 글자를 만들어 놓고 엉뚱하게 '훈민정音'이라고 이름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왕조가 끝날 때까지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인쇄하여 발간할 수 없었던 세종대왕의 고민을 이 소설은 깊이 있게 다루고 있거든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류의 소설과는 비교 불가!)
물론 역사적 사실(=실록)에 허구를 상당히 가미했다는 점은 이해해야죠. (책 말미에 연보를 달아주는 배려도...) 그런데 한글에 대해서라면 역사 미스테리물이 수십권은 쏟아질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있는데 우리 나라 소설가들이 지금까지 좀 무관심했던 것도 같고... 그것도 고조선, 조선, 나라잃은 시대를 걸쳐서 말이죠. 이 소설을 읽고, 려증동 선생님의 "배달글자"와 "배달겨레 문화사"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중세 한국어 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wp.ja]小倉進平[/wp](오구라 신페이)가 경성제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만간 제가 훈민정음 조작 사건 시말의 네티즌 판을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기사: 오마이뉴스, "왜 우리 글자를 <훈민정음>이라고 했을까"
앞에 소개한 책과 너무 판이한데요? ^^;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닌자이자 가신이었던 핫토리 한조 이야기입니다. 완전 성인물! 원래 한 권에 정가 4500원이던 걸 중고로 500원씩에 샀으니 대박!이라 생각했지만 12권으로 완결이 아니었다니... 아무튼 아저씨들이 왜 "大望"(="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열광하는지 조금 알겠습니다.
12권에서 이야기는 미카타카하라 전투(도쿠가와가 신겐에게 개박살...) 직전에 끝이 납니다. (나머지는 인터넷 검색으로 공부해라? - 일본역사 이야기) 그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스타일을 조금 맛볼 수 있겠습니다. 이 만화를 보고 나니 "나루토"가 완전히 왜색이란걸 잘 알 수 있군요. 일본의 역사물이 한국의 청소년/성인들에게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이해도 됩니다. 성리학 이론에 따른 당쟁과 카리스마와 힘에 따른 전쟁, 어느 쪽이 재미있겠습니까? (이야기거리가 되겠습니까?) 퇴계와 율곡이 理와 氣가 아닌 검과 활로 싸우면 어땠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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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만화가게에서 빌려 봤던 즐거운 모험의 기억이 아직도 두근거린다.
동대문 총판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대학시절, 몇 년간의 직장생활, 그리고 대학원까지, 내 성인의 시간은 이사할 때마다 골칫거리가 되는 만화책과 함께였다.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권의 만화... 버리고 잃어버린 책들까지 모두 헤아리면 천 권, 이백 종은 충분히 넘겠다. 그만큼 읽었으면 이제 뭔가 밖으로 나올만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만 부끄럽게 공개하던 서가에 바람을 불러오고 싶다.
90% 이상은 번역된 일본 만화다. 내 취향이 그렇다. 80% 이상이 비현실적인 배경의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 SF 만화란 현실과는 이중으로 격리된 세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얘기되는 과장된 현실에 상처받고, 감동한다. "Blame!"의 구조물은 도시의 어지러운 거리, "총몽"의 자렘은 지배계급에 대한 동경, "프라네테스"의 목성 탐사선은 세상과 타협한 우리의 꿈이다. 내가 사는 곳은 "카페알파"의 세상처럼 저물어가는 듯 잔잔하기도 하다가, "에덴"의 그것처럼 냉정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누군가 얘기했듯이, 그런 것은 상상의 문제이다. 하지만 백지 위의 상상은 아니다. '놀라운 상상'은 더할 나위 없이 숨막히는 현실의 가장 뾰족한 그 곳에서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에 대한 알레고리는 무조건 손가락질 받을 것이 아니다. 설사 지금 우리 곁의 인물과 사건이라 해도, 상상이 되고 만화로 그려질 수 있다. 그러나 판에 박힌 모든 것은 패러디의 즐거움은 줄지언정, 새로운 길을 만들고 목표를 그려줄 수는 없다. 좋은 만화는 언제나 무엇인가 이야기한다. 작가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물들이, 배경이, 예상치 못했던 사건의 전개가, 나를 깨운다.
대체 이 세상에서 만화책이라도 읽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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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2 (원제: Southbound, 2005),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6.
애니메이트 동호회 이야기 게시판에서 신중관님의 글을 읽고 “라이드백”을 5권까지 샀습니다. 남편 닮아 역시 책을 잘 지르는 아내는, 서점에서 “남쪽으로 튀어!” 두 권을 한꺼번에 들고 왔습니다. (지금 1권 값에 2권까지 껴 주네요.) 우연히도 두 책은 통하는 게 있습니다. “라이드백”은 2020년 일본의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남쪽”은 과거 급진 좌익에 몸담았던 부부가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일본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SF라고는 하나, “라이드백”은 분명 일본의 60년대를 그리고 있으니, 둘 모두 지금은 추억할 거리도 안되는 ‘과거’에 조금은 기대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albook|small-jpg|right|8956601615|]“라이드백”의 배경이야 누가 보더라도 60년대 일본 안보투쟁의 알레고리이고, (무단 링크 - 일본의 운동) 작가 역시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작가 왈, “RIDE BACK - 이야기에 등장하는 머신 호칭 외에도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라이드백이라는 바이크 머신의 개발과 상용화에 걸린 시간이 필요했겠죠. 그럴듯한 메카닉도 없이 대놓고 구닥다리 얘기를 꺼내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어쨌든 미래 같지 않은 미래에서 어쩌다(!) 라이드백에 올라탄 소녀 오가타 린은 학생운동의 표상icon이 됩니다. 놀라운 행동 능력에 대중적 인기까지 더해져 그녀는 각 정치세력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죠. 이용당하거나, 제거되거나.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의 의지로 라이드백을 타고 집회 현장을 누빕니다. 걷고 달리고 점프하는 그녀의 Fuego(불)는 말 그대로 불타는 열정이군요.
“남쪽”의 주인공은 화자인 아들 “지로”이지만, 부모님과 아이들(누나, 지로, 여동생)이 각각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 - 줄여서 革共同, 무시무시한데요. - 에서 60년대 말까지 활동하다가 탈퇴한 아나키스트이고, 공권력, 세무서, 학교 등 국가기관과 사사건건 충돌하는데다 옛 정을 생각해서 협력한 과거 조직에게도 배신을 당합니다. 아주 제대로 사회 부적응이죠. 자식들도 나이에 맞춰 험하게 살기는 매한가지고, 어머니는 누구 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는, 뻔하긴 하지만 누나의 비밀과 더불어 일종의 수수께끼 장치로 독자의 흥미를 끕니다. 아버지란 인물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좌익 활동가였을까요? (방수차에 미군 팬텀기까지…) 어머니가 칼로 사람을 찌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들 가족은 과연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구석으로 내몰려 제목대로 남쪽으로 튀기는 합니다만 남쪽이라고 만만하지는 않겠죠.
두 이야기의 구체적인 사건들은 책을 직접 보고 확인하시고, “라이드백”은 연재 중이라서 결말을 종잡을 수도 없답니다. 그래도 저 나름의 감상과 앞서 약속한 공통점은 정리를 해야죠.
라이드백 소녀 오카타 린이나 전설적인 활동가 우에하라 이치로가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운동에 환멸을 느꼈거나, 우익에 몸담고 있거나, 아무튼 ‘열혈’이 아님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해방구인 대학의 뒷문에서 배신당하고 체포되는 린, 튀어 간 남쪽에서 또 도망쳐야 하는 우에하라 부부의 모습은 행복한 삶과는 삼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혹자 왈, 우에하라 이치로는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있다는군요.) 그것도 동료에게, 조직에게 배신을 당한 채 홀로라니 학생운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운동을 하면 삼대가 고생한다는게 허튼 얘기는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남쪽”의 결말은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니 너무 우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웅이 자신의 조직에 배신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스토리야 흔합니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고난을 극복하고 큰 뜻을 펴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늘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결국 혼자니까요. “남쪽”의 지로네 가족은 남쪽에서 이웃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그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여행을 한다는 캐나다 출신 백수 한 명입니다. 자치회의 아이콘 역시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초라한 개인으로 돌아가 끌려다닐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지로의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하나 봅니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중략)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세상은 뭔가를 해보기엔 너무 단단하지만, 꿈꾸는 걸 포기하기엔 아직도 정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그리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애쓰나 봅니다. (노마진 풍으로)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도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금은 슬프지만 뭐 어떻습니까. 다들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건데. 별 대단치도 않은 조직간의 갈등에 사람을 죽이고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아빠의 친구 아저씨도 있는 거고, 자치회의 소모품으로 라이드백 소녀의 대역이 되어 경찰의 한 방에 저세상 가버린 철없는 학생도 있으니까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집회 현장을 자신의 무대로 삼아 - 한때 잘나가는 댄서였거든요 - 학생운동의 아이콘으로 데뷔하는 린과, 법이고 소유고 다 무시하며 불쌍한 시골 순경을 자본가의 앞잡이라고 호통치는 아버지가 저에게 전하는 공통의 메시지는, 네 생각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사상이야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이지만, 혼자 결정하고 행동할 만큼 컸다면, 국가가, 학교가, 군대가, 회사가 주입시킨 말도 안되는 주장은 치워두고 - 그런거 주입 받은 적 없다고 불끈하실 분들은 그냥 그대로 살면 됩니다 -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주인공의 삶입니다. 린이 Fuego에 올라탄 건 우연이었지만, 시위대의 중심에 선 건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로는 어쩌다 이상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의 집을 지키기 위해 꼴보기도 싫던 아빠와 함께 투쟁하며 어린 아나키스트가 되어갑니다. 운동이 무너지고 타락하고 희화화된 시대에 가장 위력적이고 파괴적인, 끝까지 저항하는 주체는 결국 나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주사파?) 지로에게 고독을 두려워 말라는 아빠의 당부는, 어째 너무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이 두 책의 이야기는, 무대 위로 날아오를 라이드백도 없고 튄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남쪽도 없는 보통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그런 스토리가 아닙니다. 땅 주인과 맞서는 “남쪽”은 말할 것도 없고 - 제가 전세금을 날려먹은 적이 있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 , “라이드백” 5권까지의 진행이 전반적으로 암울하긴 하지만 이 작가는 “공상과학 에디슨”에서 맛만 보여준, SF적인 비전을 가졌으니까요. 하긴, 제가 이런 글을 써서 올리는 것만 봐도 이 책들은 뭔가 힘을 주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P.S.
“남쪽”의 말미에서 지로 어머니가 떠나기 전, 딸에게 감동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 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냐?”
아줌마, 큰딸은 이미 다 컸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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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하숙집 옆방 책장에서 꺼내 읽었던 책. 그 충격은 컸지만 시간이 흘러 '대단한 책'이란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마음이 내켜 결국 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유태인 부모님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아들. 모든 것을 생생히 증언하는 아버지는 그러나 영웅도,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친구, 가족, 믿음, 사랑...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albook|small-gif|right|8989501059|width="100" height="152"]
전쟁(같은 환경)은 이런 것들을 가르쳐준다.
2. 팔레스타인
"쥐"와 함께 구입해서 앞부분만 읽고 일단 접어뒀다. 팔레스타인을 취재하는 미국 기자의 이야기이다. 불행히도, 역사는 (희극적으로) 되풀이되고,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전쟁에서 배워야한다. 조금 지나면 이 책도 구하기 힘들어질 듯.
[albook|small|left|8990781396|width="100" height="145"]3.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러나 아이들은 전쟁 속에서도 자라고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기 전에 전쟁터에서 죽기도 한다.) 이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마르지' 역시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으며 성장한다. 훌륭한 부모님과 친척들 사이에서 그녀가 가꿀 수 있었던 가장 큰 덕목은 풍자와 해학 - 이 만화책의 힘 - 이 아닐까.
우리가 잘 모르던 이란의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이 가족의 이야기에는 곰곰히 생각할 거리가 많다. 우리 나라의 민주화, 미국이 말하는 '악의 축', 이슬람 종교와 정치...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르지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며, 그녀는 놀랍도록 매력적인 소녀란 점이다.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쓴다.
[albook|small|right|8970753494|width="100" height="142"]4. 저녁뜸의 거리
"일본은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갖는지는 동아시아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살던 이 가족에게 원폭은 현실이었고, 오랜 시간 - 다음 세대까지 -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일본인들로부터도 보이지 않게 차별당하는 그들의 삶처럼, 전쟁은 인간과 사회의 숨기고 싶은 밑바닥을 헤집어 놓는다.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은 과거를 미화하지만, 전쟁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albook|small|left|8970592539|width="100" height="143"]5.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
앞에 소개한 책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의 밝고 명랑한 만화책이다. 귀여운 작가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재일교포 2.5세. 한국인 어머니는 교포 2세 아버지와 결혼해 작가를 낳았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한국이란 나라,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일본을 다시 알아가는 과정이 에피소드로 엮여 있다. 개성있는 여러 인물들 중 최고는 역시 어머니! IMF를 겪는 한국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우리 나라'라는 것이 교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작가의 재미난 웹사이트 http://www.koomi.net/에는 다른 단편들도 많이 실려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여기 껴 있냐고? 한국과 일본의 오랜 전쟁,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이 지금의 재일교포를 낳았다면 대답이 될까.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쥐"를 그렸듯이 구미는 한국을 겪으며 그녀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참고:
책을 읽은 순서는 (1),5,4,3,1,2
책을 구입한 순서는 5,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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