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8. 16:34
[일상/독서]
물론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은 일단 제외하고 나열해 보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지만 읽은 순서와 작가별로 대충 묶었습니다.
유령신사, 시바타 렌자부로
유령 탐정(?)의 존재를 제외하면 내용 자체는 그다지 독특하지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등장인물들로 서로 연결되는 형식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유령의 추리(폭로?)는 나름대로 뒤통수를 톡 치는 반전의 효과도 있고... 책의 해설에 부록으로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이 있어 그 뒤 다른 책을 사는데 가이드가 되었다.
점과 선/제로의 초점, 마츠모토 세이초
"점과 선"은 사회파의 시작이 되는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전까지의 '본격'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횡령 사건이라는 배경은 그다지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실제 기차 시간표로 만들어진 트릭과 함께 형사의 고독한 추적에 어울리는 어두운 바닷가의 묘사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로의 초점"은 전후 일본의 혼란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증명"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서는 아내의 앞에 펼쳐지는 거칠고 막막한 바다(혹은 과거)의 존재는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덤을 상징하는 바다는 결말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불연속 살인사건, 사카구치 안고
내가 고른 모든 책이 다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끈적한 분위기 속에서 많이 죽는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오래 전에 출판된 듯한 인쇄상태에다 상하권으로 나뉜 것까지, 서점에서 얼른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사서 읽고보니, 이건 사람이 죽고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추리소설이라 얘기하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껄끄럽다.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종전과 고도성장기를 살아가는 일본 사람들과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른 나라 사람인 내가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출판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내가 보기에도) 추리소설로서의 약점은 전체적인 작품성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층의 사각지대, 모리무라 세이치
"인간의 증명" 이후에 읽은, 작가의 추리소설 데뷔작이다. 호텔 열쇠 트릭, 숙박부 트릭, 비행기편 트릭 등이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엔 뭔가 조금 부족하다. 다만, "高層の 死角"이란 제목은 정말 근사하다.
음울한 짐승, 에도가와 란포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 이름대로 어릴적 읽었던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분위기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덧붙여 일본적(?)인 변태 성향까지 가미되어, 누구 말대로 작품의 흡인력은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 뒤에 있는 몇몇 단편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포장된 표제작 "음울한 짐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읽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포의 "황금벌레"에 대한 오마쥬이자 패러디랄 수 있는 "이전동화" 등 단편들 역시 기괴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러나 자꾸 읽게 되지는 않는다...)
흑사관 살인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이 책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수십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고 말았으니 결국 탐정과의 대결에서는 완전히 도망친 셈이다. 번역이 어떻니 하는 말이 있지만, 더 잘 번역한다고 해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바뀌는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제는 작가의 정신세계다. 1930년대에 활동했다고 하니 시인 李箱이 연상되기도 한다. 서양 문화가 지식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 때가 지난 지금, 이런 소설은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혼징 살인사건/나비부인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뭐니뭐니해도 명탐정 긴다이치 쿄스케(코스케?)가 처음 등장한 작품! 그러나 문제의 핵심인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옥문도"와 더불어 작품의 테마가 되는 일본적인 봉건성과 인습이란 것도 마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읽다보면 김전일 시리즈가 떠오르는, 기상천외한 트릭의 연쇄살인을 다루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다.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가장 최근에 읽은 일본 추리소설. 앞서 언급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결과는 만족. 정성을 들인 번역 탓인지 "혼징 살인사건"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없어지고, 몰입도는 더 높아진 것 같다. 긴다이치 탐정의 활약(살인사건을 하나도 막지 못했는데 무슨 활약...)도 볼만하고, 막판의 반전도 충격적이다. 이렇듯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사건의 측면 - 트릭이나 범인 - 은 조금 못마땅한 것이, 작가가 공정한 게임을 주장하면서도 교묘히 반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릭의 디테일이 조금 불완전한 면도 있고... 그러나 이번 여름의 끝을 장식한 괜찮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령 탐정(?)의 존재를 제외하면 내용 자체는 그다지 독특하지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등장인물들로 서로 연결되는 형식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유령의 추리(폭로?)는 나름대로 뒤통수를 톡 치는 반전의 효과도 있고... 책의 해설에 부록으로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이 있어 그 뒤 다른 책을 사는데 가이드가 되었다.
"점과 선"은 사회파의 시작이 되는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전까지의 '본격'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횡령 사건이라는 배경은 그다지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실제 기차 시간표로 만들어진 트릭과 함께 형사의 고독한 추적에 어울리는 어두운 바닷가의 묘사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제로의 초점"은 전후 일본의 혼란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증명"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서는 아내의 앞에 펼쳐지는 거칠고 막막한 바다(혹은 과거)의 존재는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덤을 상징하는 바다는 결말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내가 고른 모든 책이 다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끈적한 분위기 속에서 많이 죽는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오래 전에 출판된 듯한 인쇄상태에다 상하권으로 나뉜 것까지, 서점에서 얼른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사서 읽고보니, 이건 사람이 죽고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추리소설이라 얘기하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껄끄럽다.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종전과 고도성장기를 살아가는 일본 사람들과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른 나라 사람인 내가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출판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내가 보기에도) 추리소설로서의 약점은 전체적인 작품성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증명" 이후에 읽은, 작가의 추리소설 데뷔작이다. 호텔 열쇠 트릭, 숙박부 트릭, 비행기편 트릭 등이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엔 뭔가 조금 부족하다. 다만, "高層の 死角"이란 제목은 정말 근사하다.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 이름대로 어릴적 읽었던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분위기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덧붙여 일본적(?)인 변태 성향까지 가미되어, 누구 말대로 작품의 흡인력은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 뒤에 있는 몇몇 단편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포장된 표제작 "음울한 짐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읽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포의 "황금벌레"에 대한 오마쥬이자 패러디랄 수 있는 "이전동화" 등 단편들 역시 기괴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러나 자꾸 읽게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수십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고 말았으니 결국 탐정과의 대결에서는 완전히 도망친 셈이다. 번역이 어떻니 하는 말이 있지만, 더 잘 번역한다고 해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지만) 바뀌는 것은 조금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문제는 작가의 정신세계다. 1930년대에 활동했다고 하니 시인 李箱이 연상되기도 한다. 서양 문화가 지식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 때가 지난 지금, 이런 소설은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명탐정 긴다이치 쿄스케(코스케?)가 처음 등장한 작품! 그러나 문제의 핵심인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옥문도"와 더불어 작품의 테마가 되는 일본적인 봉건성과 인습이란 것도 마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읽다보면 김전일 시리즈가 떠오르는, 기상천외한 트릭의 연쇄살인을 다루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일본 추리소설. 앞서 언급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결과는 만족. 정성을 들인 번역 탓인지 "혼징 살인사건"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없어지고, 몰입도는 더 높아진 것 같다. 긴다이치 탐정의 활약(살인사건을 하나도 막지 못했는데 무슨 활약...)도 볼만하고, 막판의 반전도 충격적이다. 이렇듯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좋은데, 사건의 측면 - 트릭이나 범인 - 은 조금 못마땅한 것이, 작가가 공정한 게임을 주장하면서도 교묘히 반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트릭의 디테일이 조금 불완전한 면도 있고... 그러나 이번 여름의 끝을 장식한 괜찮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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