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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14. 20:51
꽤 오래 전부터 내 블로그의 리퍼러 목록에 매일 이상한 것이 뜬다.
리퍼러 기록

누군가 포털(다음)에서 내 블로그의 주소("http://slowtime.dnip.net/slowtime")를 입력하여 검색을 수행했고, 그 결과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이런 리퍼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내 기억에 따르면 대략 지난달 중순경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선거법에 대한 글("선거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나라")을 이 블로그에 쓴 시기와 일치한다. 그 즈음부터 매일 꼭 한 건씩 이런 리퍼러가 나타났고, 가끔은 블로그의 옛날 주소로 검색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매일 꼭 한 건씩이다.

직접 내 블로그를 방문하거나 RSS feed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이렇게 검색하는 이유는 뭘까? 검색 결과를 살펴보니 두 가지 이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첫째, 내 블로그의 주소가 포함된 다른 블로그의 글, 예를 들자면 내가 쓴 글을 인용하거나 퍼간 글도 찾을 수 있다.
둘째, 블로그 등에 댓글을 쓸 때 블로그 주소를 같이 남기기 때문에 내가 쓴 댓글도 검색할 수 있다.

오늘 갑자기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음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고발 직접 당해보니...... - ARMA's Life Story
10.20일 경부터 지금까지 포스팅한 것이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하니 아마 관심대상으로 분류되어 쭈욱 모니터링 당해온 것 같습니다.

나의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2007. 11. 9. 16:35

어제 인터넷에서 눈에 확 띄는 일러스트를 봤다.
뉴스위크 한국판 표지라는데, 이번 주에 발행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사 꼭대기의 레드카펫과 아래로 죄어오는 너트 밑 사람들의 극적인 대비...

뉴스위크 표지

그런데 너트 위에 서 있는 검은 양복 셋이 눈에 띈다. 아래쪽 사람들이 위로 기어오르는 걸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 중 동?
정부, 기업, 언론?
구조조정 전문 경제관료, 컨설턴트, 구사대?

나는 검은 양복들을 부동산, 사교육, 비정규직 삼총사로 이름붙이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을 막고, 서민을 좌절시키는 것으로 집값 폭등, 교육비 부담, 고용 불안 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들, 또는 그런 현상들 역시 스패너를 돌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 -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부르자 - 의 일부일 것이다.
2007. 11. 8. 01:16

어떻게 보면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생각을 하나로 묶어 본다.

1.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에 대해

돈이 미술작품인가? 미술계 인사에게만 자문? - 한글로
위 글에 따르면, 2007년 10월17일 한국은행이 밝힌 고액권 화폐도안자문위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행 직원 (3명): 발권국장, 발권국 부국장, 발권정책팀장
한국조폐공사 직원 (2명): 디자인조각팀장, 위조방지센터 부장
미술대학교수 (5명): 미술사 1명, 시각디자인(색채학, 타이포그라피 등) 4명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과정 석연찮다" - 동아일보, 2007.11.7
그러나 오늘 동아일보 기사에 나온 구성은 다르다.
한국은행 (2명): 이승일 부총재, 발권국장
역사학자 (3명)
분야별 위원 (5명): 철학·사상사, 미술사, 과학사, 문학, 그래픽디자인 분야
민간 자문위원 8명 중 4명과 접촉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이에 자문위원을 다시 구성했든지 이전 정보공개를 거짓으로 한 것이 된다. (처음 구성은 사실 문제가 많았다.) 그리고 자문위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도 의문스러웠다고 한다.

상당수 자문위원은 독립운동가로서 안창호와 김구의 공적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초상인물로는 안창호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한은은 "명단을 밝히면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방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위원들의 면면을 비공개로 했다.

어떤 높으신 분이 신권 초상인물로 김구와 신사임당을 그렇게 밀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신사임당 선정의 근거와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

여성 또는 과학자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물 선정이 시작되면서부터 나왔는데, 과학자 하면 장영실이 쉽게 떠오르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세력(집단, 조직...)이 신사임당을 적극 추천했을까? 일단 대표적 여성단체들은 아니다(한국여성단체연합 성명 참고). 출신지인 강릉 지역과 주부클럽연합회라는 단체가 지지했다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천안 지역과 여성단체연합이 지지하는 류관순과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행이 밝힌 선정 이유가 가정과 교육의 중요성이라는데, 어떻게 그게 여성만의 일이며, 신사임당이라는 인물로 대표될 수 있단 말인가? (출세한 자식 덕인) 후대의 미화를 벗기고 신사임당의 행적을 보면, 적어도 가정과 교육이란 가치와는 별 상관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끼워 맞추기는...

2. <정조 이산>을 보며: 노론과 친일파가 추구했던 것

정조 이산
재미있다는 이유로 월화드라마 <정조 이산>을 아내와 함께 챙겨 본다. 그러나 웃고 즐기기보다는 답답해하고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극중에서 세손(정조)은 집권 세력인 노론으로부터 지위와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세손 편에서 노론 일당을 손가락질하며 드라마를 보지만, 정조의 급서와 개혁의 좌절, 이어지는 세도정치를 떠올린다면 이 드라마가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악역을 맡고 있는 노론의 이상(理想)은 (그런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었을까? 왕마저도 부정할 수 있었던 그들의 이념은 어떤 것이었길래 조선 후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이런 주제는 전문적인 분야에 속하지만 나름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대답을 찾아본다.

친일파가 된 노론:
영원한 주류, 그 오만과 편견 - 이덕일, 한겨레21, 2001.2.21

조선의 멸망은 비극이었지만 더 큰 비극은 주류 노론이 국망(國亡)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노론은 아무도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제에 협력해 지배층의 지위를 온존했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한 직후인 1910년 10월 후작 여섯명, 백작 세명, 자작 스물명, 남작 마흔다섯명 등 총일흔여섯명에 달하는 인물들에게 이른바 ‘합방 공로작(功勞爵)’을 수여했는데 대부분 노론이었다. 일제가 자의적으로 수여한 남작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수작(授爵)의 영광에 감읍했다.

독립운동을 거부한 노론:
[한국철학의 고향을 찾아서] 위정척사파와 춘천-양평-부안 - 동아일보, 2002.7.14

그러나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의 간재학파는 현실 참여보다는 외롭게 도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전우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제자들을 이끌고 전북 부안 계화도로 들어가 다시는 뭍을 밟지 않았다. 도를 실현할 수 없을 만큼 시절이 혼란할 때 은둔해 도를 지키며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공자와 맹자도 택한 길이었지만, 의병에 가담하라는 제의도, 파리장서에 서명하라는 제의도 거부했던 그는 나라의 위태로움을 돌보지 않는 ‘썩은 유자(腐儒)’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라잃은 시대, 3.1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유림들은 독자적으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파리장서운동을 계획한다. 곽종석과 김창숙 등이 주도한 이 운동에 이이와 송시열, 곧 노론의 학통을 이어받은 호남 유림의 영수 전우(田愚)는 참여하기를 거부한다. 500년의 종사보다는 3000년의 '도통'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노론이 지키려고 했던 성리학의 도통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조선 말의 백성들은 세도정치에 수탈당하고 결국 나라마저 잃고 만다. 결국 노론이 친일파로 변신하고 독립운동을 거부하며 지켜낸 것은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이었다. 사상은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과거와 현재: 우리 시대의 노론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노론은 아직도 우리 사회, 특히 역사학과 문화예술계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권력을 쥐고 주류로 남아 있다. 솔직히 나는 이번 신권 초상인물 선정에도 이들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정권이 여러번 바뀌었지만 친일파 청산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들의 이데올로기와 영향력 역시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의 권력을 쥐고 주류를 자처하면서,
국가의 위기(예를 들자면 IMF 사태)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당면한 개혁(예를 들자면 삼성 비자금 수사)을 거부하는 세력

나는 '우리 시대의 노론'이라 부르고 싶다.
2007. 11. 1. 20:03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The struggle of man against power is the struggle of memory against oblivion.
-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1.
시사IN에서 삼성 비자금 사건을 읽다가 아내가 내게 물었다. "삼성 X파일 사건이 뭐였지?" 이상호 기자, 안기부, 도청, 비자금... 단편적인 낱말들만 머리를 맴돌 뿐 사건의 핵심과 본질이 기억나지 않았다. 찾아보니 겨우 2년 전 일이다.

[wp]이상호 엑스파일[/wp] - 위키백과

2.
전에는 대통령 후보 이명박씨가 어떤 일로 국회의원을 그만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선거법 위반이었던가... 수많은 블로거를 선거법 위반자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 선거법을 어겼을리가.

[wp]이명박[/wp] - 위키백과 (2.8.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

3.
1997년12월, IMF라는 폭풍 앞에서 내가 병역특례로 두 달 전에 입사한 회사는 당분간 월급으로 차비 정도밖에 못 준다고 알려왔다. 해고되지 않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던가. 크리스마스 전날 집으로 가는 골목길 어귀에 있는 빵집에서 조그만 케이크를 사 들고 가는 아저씨들을 보며 코끝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전이다. 나는, 사람들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IMF 따위 걱정하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도덕이니 정의니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경제가 제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IMF로 생계를 위협받았던 이른바 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금모으기 운동에 누가 참여했던가?)

4.
기억은 지워지고, 조작되고, 묻혀버린다.
우리의 기억을 끝없이 확장시키고 있는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진실들은 삭제되고, 수정되고, 무의미한 뉴스 속으로 숨어버린다.
어느날 문득 자신의 기억 속에서 커다란 공백을 발견했을 때, 포털의 메인 뉴스에 절대로 뜨지 않는 충격적인 기사를 발견했을 때,

그 때가 바로 싸울 때다. 우리의 기억을 갉아먹는 망각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파괴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2007. 10. 19. 20:41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속버스를 오래 타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서 항상 불만이었던 것이 여름철에 겪게 되는 지나친 냉방이었다. 특히 뒷자리에 앉을 때면 선선함을 넘어 한겨울같은 냉기에 한여름 감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기사와 뒷자리 손님
고속버스의 강력한 에어컨은 운전 기사가 켜고 끈다. 그런데 운전석은 뒷자리에 비해 햇볕이 잘 들고, 환기를 위해 열어둔 작은 창문도 있어서 더울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서 '적당한' 실내 온도를 맞추려다보니 저 멀리 떨어진 뒷자리는 극지방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뒷자리 손님들은 덜덜 떨다가 참다못해 복도를 위험천만하게 걸어가서 기사에게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기사라면 손님의 하소연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저씨, 너무 추운데 에어컨 좀 꺼주세요."
"괜찮은데 왜 그래요?"

멀어지는 통로 - 선거와 여론
고속버스 실내 온도를 경제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에어컨을 켜고 끄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 - 정치인과 공무원 - 이 그 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뒷자리 손님들을 얼마나 고려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운전 기사와 뒷자리 손님의 이해관계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양자를 이어주는 선거와 여론이라는 통로는 우리 나라에서 지역주의와 보수 언론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선거법을 비판하는 블로거들의 움직임은 그것이 정치인과 국민들(특히, 다수의 하위 계층)을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뒷자리 손님들의 선택
비유를 계속하자면, 우리 사회라는 고속버스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점점 길이가 늘어나고 있다 (양극화). 이제는 뒷자리 손님이 운전 기사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가기도 어렵다 (계급 고착). 뒷자리 손님이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에어컨 스위치를 그리로 가져 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손님들은 버스를 뜯어고쳐야 하는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고려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앞쪽에 있는 빈 자리를 노린다.

더 좋은 버스는?
운전 기사가 에어컨 조작까지 신경써야 할 이유는 없다. 기술이 된다면 온도 센서를 뒷자리에 달고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운전 기사와 앞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이런 변화를 달가와할까? "왜 뒷자리 손님들만 배려해야 하는가? 反기사 정서(?)때문에 운전을 못하겠다." 그러나 앞자리 손님들에게는 열 수 있는 창문이 있고 덮을 수 있는 담요가 있다. 정책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쪽은, 개념 없는 기사를 만나서 가장 괴로운 쪽은 뒷자리 손님이다. 고속버스는 이렇게 나의 현실 감각을 일깨운다.
2007. 10. 18. 02:06
한나라당은 구글과 올블까지 장악할 수 있을까? - twinpix
정두언 의원, 블로그를 모독하지 마쇼 - 크리티카
위의 글을 읽고 현행 공직선거법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단속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오늘(2007년10월17일) 선관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씨는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선관위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했답니다. 보도자료에서 인용하겠습니다.

■ 뛰는 선관위 감시 위에 나는 사이버선거법위반!!
- 17대 대통령 선거관련 사이버선거법위반 단속 실적 25,135건
- 25,135건중 고발, 수사의뢰, 경고 등 실제적인 제재조치는 0.08%에 불과!
- 메타 블로그를 통해 외국 사이트에 개설한 블로그를 활용한 신종 사이버선거법위반 성행! 선관위 무대책으로 일관!

선관위의 17대 대선 관련 사이버선거법위반 단속 실적 현황은 참고할만한 자료입니다.

선거법 단속

대부분 삭제요청에 그치고 있습니다. 선관위가 게을러서 그런 걸까요?
국회의원 정두언씨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이버부정선거감시단을 확충하여 삭제요청 이상의 적극적 감시활동을 강화하라.

아무런 법적 조치 없는 임시방편의 대처로는 불법선거운동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만 초래 할 것임. 따라서 강력한 조치를 하기위해서는 사이버자동검색시스템에 올라온 위법사례들을 사이버부정선거감시단을 확충하여 삭제조치외에 고발 조치 등 적극적 감시활동이 되어야 함.

한마디로 '본때를 보여 주라!'는 얘깁니다.

2. 네이버를 본받아 다른 포털에서도 선거와 관련한 댓글 달기를 억제시키도록 하라.

현재 네이버라는 포탈싸이트에서는 선거기간 중 선거와 관련한 댓글 달기를 봉쇄해 놓아 사전에 위법이 발생하지 않게 유도하고 있음. 이처럼 다른 포탈싸이트에도 적용할 수 있게끔 선관위 지도가 필요함.

'댓글 없는 포탈'을 꿈꾸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타의 모범이군요.

3. 새로운 네거티브 방식인 블로그와 메타블로그를 감시하라.

현재 가장 많은 사이버선거법위반을 저지르는 것은 각 홈페이지가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는 블로그임. 특히 올블로그 처럼 블러그를 링크시키는 메타블로그 싸이트가 가장 큰 문제임.
이는 현재 한나라당 후보의 네거티브 유포의 진원지로 활동하고 있음. 언론도 아닌 것이 블로그의 포털로 기능하면서 싸이버 테러에 가까운  사이버선거법위반을 저지르고 있음. 특히 블로그가 국내 블로그 사이트가 아닌 미국의 등 외국 사이트를 이용 블로그를 개설하여, 신원사항을 감추고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음으로 인해 선관위나 사이버수사대의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음.

'언론도 아닌 것'은 입 닫으라는군요. 아래 화면이 보기 싫은가 봅니다.
올블로그

한나라당에서 네거티브 유포, 싸이버 테러라고 하니 김연수님의 "대통령 이명박, 괜찮을까?"가 얼른 떠오릅니다. 그분의 과거를 밝히면 테러가 되는 세상입니다. 조만간에 올블로그에도 선관위의 공문이 날아오겠군요.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면 경찰서 가는 나라
선거 기사에 댓글이 없는 나라
언론도 아닌 것들은 목소리를 못 내는 나라
인터넷에 실명만 나오는 나라

선거기간 중에는 선거에 대해 국민들이 아무 말도 못하는,
선거법이 잘 지켜지는 이런 나라, 참 살기 좋겠습니다.
2007. 10. 9. 15:48
오늘(10월9일)은 한글날이다.

1. 한글은 언제 만들었을까?

어떻게 10월9일이 한글날이 되었을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있는 한글날의 유래를 보면 그 복잡한 경위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서 그 사연을 짚어본다.

세종 25년(1443년) 12월30일 /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 28년(1446년) 9월29일 /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생략)"
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생략)"
하였다.

이 두 기록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처음에 학자들은 3년 동안 수정보완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하고 음력 9월29일을 양력으로 환산, 10월2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서 《훈민정음》은 책을 일컫는다는 점이 밝혀졌고, 세종28년의 기사는 책의 원고가 완성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본이 발견되었다. 거기의 정인지 서문에서는 '9월 상순'으로 적고 있었기에, 하순에서 상순으로 20일을 앞당겨 지금의 10월9일이 한글날로 정해진 것이다.

어쨌거나 훈민정음은 세종25년 섣달 그믐날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2.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세종과 집현전 학자(학사)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숱한 오해가 많았다. 일반인들의 생각은 대개, "세종 혼자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종이 큰 그림을 그리긴 했어도 실무는 신하들에게 시키지 않았겠느냐는 이런 통념은 아마도 현대 조직사회의 생리를 반영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실록을 살펴보자.

세종 26년(1444년) 2월16일 / 집현전 교리 최항·부교리 박팽년 등에게 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다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최항(崔恒)·부교리 박팽년(朴彭年),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이선로(李善老)·이개(李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등에게 명하여 의사청(議事廳)에 나아가 언문(諺文)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고, 동궁(東宮)과 진안 대군(晉安大君) 이유(李瑈)·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모두가 성품이 예단(睿斷)하므로 상(賞)을 거듭 내려 주고 공억(供億)하는 것을 넉넉하고 후하게 하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그 다음해 2월의 일이다. 세종은 집현전에 훈민정음을 공부해서 한자로 된 책을 번역하도록 시켰다. 상까지 내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집현전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세종 26년(1444년) 2월20일 /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최만리(崔萬理)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디어 보옵건대,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신 등의 구구한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사와 감히 간곡한 정성을 펴서 삼가 뒤에 열거하오니 엎디어 성재(聖栽)하시옵기를 바랍니다.
1.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생략)"
......
임금이 또 하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처음부터 죄주려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소(疏) 안에 한두 가지 말을 물으려 하였던 것인데, 너희들이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변하여 대답하니, 너희들의 죄는 벗기 어렵다."
......

단 나흘만의 반응이었다! 12명의 집현전 학사들 중 7명이 올린 이 상소문은 훈민정음 따위 필요 없다는 집현전의 '공식 답변'이었다 (당시 대제학이 없었음). 어떤 신하도 찬성하고 돕지 않았다. 세종이 얼마나 좌절했을지 상상이 간다. 나는 이 상소문과, 이어지는 세종과의 문답을 반드시 훈민정음과 함께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훈민정음이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 태어났는지를 알리기 위해.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

아직도 정인지, 성삼문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의도에서 그러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삼문은 세종28년에, 정인지는 세종30년 쯤에야 집현전 학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의 서문을 쓸 때, 정인지는 예조판서였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옛 글자를 참고하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검색해보니 정조 7년 홍양호란 사람의 상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우리 세종 대왕께서 하늘이 낸 예지(睿智)로 혼자서 신기(神機)를 운용(運用)하여 창조(創造)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대왕은 배달말을 말하고 한글을 쓰는 이상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2007. 10. 8. 22:01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으로 어떤 걸 쓰고 있습니까? 만족합니까? 그리고 안심할 수 있습니까?

집과 학교에 PC가 있다보니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백신을 쓰고 있습니다. Windows XP에서는 보안 차원에서 백신이 없거나 최신이 아닐 때 경고를 하고 있죠.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구성원들을 위해 라이센스를 맺은 제품(V3, 바이로봇 등)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보안 센터

현재 학교 PC에는 전산실의 정책에 따라 V3 Internet Security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업데이트 및 보안 정책이 전산실에서 관리됩니다. 그러나 집의 PC 두 대는 각각 AOL에서 무료 배포했던 Active Virus Shield (Kaspersky의 엔진을 사용했고, AOL은 현재 다른 백신을 배포 중)와 avast! 4 Home Edition을 쓰고 있습니다. 둘 다 무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Active Virus Shield 같은 경우는 AOL과 Kaspersky의 계약이 끝났음에도 업데이트가 계속 제공되더군요. avast!는 한글판도 있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좋은 무료 백신이 많습니다. 저는 이들 백신에 대한 정보를 주로 여름하늘님의 블로그 SkySummer.com에서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료 백신 논란

나는 개인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는 업체들이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보안 쪽은 개인 시장에 비해 기업 시장이 훨씬 크다는 정도 밖에는 모른다. 나의 관심은 내 PC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싸고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자료들은 국내의 몇몇 백신 SW보다 해외 무료 백신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리라. 그런데 세상이 쉽게 변하는 법은 없나보다.

최근 네이버가 'PC그린'이란 이름으로 무료 백신을 서비스하려다 무기한 연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기사 참고). 'PC그린'이란 서비스는 네이버 PC그린 1차 사용후기를 보면 바이러스/스파이웨어 검사 및 치료와 PC 최적화 도구이다. 바이러스 백신 부분은 유명한 Kaspersky의 엔진을 쓴다고 하니 국산 유료 백신과의 경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리 나라 보안업계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협상이 진행되고는 있겠지만 양 쪽의 생각은 평행선인 듯하다. 거대 포탈의 불공정 경쟁 vs.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일.
PC그린

이 사안에 대해 블로그를 통해서도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 나온다.

네이버와 무료백신에 관한 음모론 - Forget the Radio (팟캐스트 방송)
네이버에 대한 안철수 연구소의 한심한 딴지 - SkySummer.com

사실, 반대된다기 보다는 서로 다른 측면을 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음모론)는 네이버의 시장 확대 전략(음모?)에 대해 보안 업체들의 반발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네이버라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각심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후자(딴지)는 구글과 AOL 등의 무료 SW 배포를 예로 들면서 공익적인 측면에서 무료 백신이 당연함을 얘기하고, 안티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인터넷 시장의 변화 - 플랫폼으로써의 웹 - 를 거부하는 안철수 연구소의 딴지가 소비자의 선택 기회를 없애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

이런 논란의 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AOL이 Active Virus Shield를 배포할 때 우리 나라 백신 회사들이 왜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업무용 오피스 SW(OpenOffice.org)조차 무료로 배포되는 세상에서 딴 나라 회사의 정책에 딴지를 걸 배짱은 없었으리라. 앞서 소개한 글(음모론)에서는 네이버의 무료 백신이 불공정 거래(부당하게 낮은 가격, 부당한 고객 유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식으로라면 경쟁력 있는 모든 공개SW는 다 불법이게? 물론 우리 나라 인터넷 환경에서 AOL과 네이버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 논란의 핵심은 '막강한 힘을 가진 네이버'의 사업 확장으로 인한 새로운 독점의 가능성이 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용자들은 근시안적이다. 당장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지금 고려한다는 것은 듣기엔 좋아도 위험하고, 기대했던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 경우에도 네이버의 무료 백신은 바이러스와 스파이웨어(악성코드) 때문에 몸살을 겪고 있는 개인 사용자들에게 단기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한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이 결국 네이버의 지배력을 키워서 우리 나라 보안 업체들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도 손해를 보는 상황을 불러오게 될까? 그런 상황은 얼마만큼 확실할까?

"이렇게 네이버가 무료 백신을 공급해서 안철수 연구소 등의 백신 업체가 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네이버 말고는 백신 서비스 회사가 없어지고, 경쟁이 없는 독점 상황이 되면 네이버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습니다. 유료로 바꾼다거나, 부가 조건을 붙인다거나.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그 백신을 써야 하는, 독점적 서비스에 종속되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 "네이버와 무료백신에 관한 음모론"에서 옮겨 적음.

그러나 나는 위의 시나리오에서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1. 네이버의 무료 백신 때문에 망해버릴 보안 업체라면 차라리 지금 당장 망하는 게 낫다. 혹시 지금 우리 나라 보안 업체들이 네이버의 무료 백신과 경쟁할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AOL이 배포한 AVS는 다시금 좋은 반례가 된다.
2. 네이버의 지배력은 제한적이다. 백신은 운영체제와는 다른, 독립적인 SW로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다. "네이버 백신 안쓰면 네이버 못 써!"라는 황당한 정책이 통할 리도 없고, 네이버를 쓰면 무조건 네이버 백신이 자동으로 설치되게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요는 "울며 겨자먹기로" 네이버 무료백신을 쓸 사용자는 없을 것이란 말이다. 네이버 무료 백신 때문에 외국 보안 업체들이 망할까? 이 분야에 '한국적 특수성'이란 말장난일 뿐.

나는 Microsoft의 Windows가 독점적 상품임을 안다. 그리고 Internet Explorer와 Windows Media Player가 끼워팔기처럼 따라오면서 지금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질서는 지배적 사업자에 의해 언제나 왜곡될 수 있으므로 소비자들의 선택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는 또한 냉정하다. 과거의 Realplayer가 단지 Microsoft의 불공정행위에 의해서만 사라졌을까? 점점 사용자가 늘고 있는 Firefox 웹 브라우저의 성공은 어떠한가. 공정거래법 또는 반독점법의 취지는 경쟁 촉진과 이를 통한 소비자의 이익이다. 나는 네이버의 무료 백신이 이런 목적에 아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포털, 다른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도 부디 좋은 무료 백신을 많이 배포하면 좋겠다.(엉터리 백신 말고!) 이는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며, 장기적으로 배포 업체와 백신을 제작하는 보안 업체,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며 겁을 주고 치료비를 요구하는, 사기공갈 SW들을 언제까지 방치할텐가!

PS.
한겨레21에 이 일을 다룬 기사가 있다. 죽음을 부르는 공짜의 유혹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이 ‘공짜’의 뒷면을 후벼보면 러시아산 엔진으로 저렴하게 백신의 틀을 갖추고 거기에 이름만 새로 붙여 공급하겠다는 심산이 드러난다. 일찌감치 국내 시장 진입을 노리던 러시아 업체로서도 괜찮은 선택이다. 하나 365일 24시간 대응 체제를 갖추고 보안 전문업체를 꾸려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쉽게 시장을 뒤흔드는 꼴이다.
Kaspersky 엔진을 "저렴한 러시아산" 짝퉁으로 치부하다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백신을 만드는 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쉽게 기사를 쓰는 꼴이다. 기자는 다른 무료 SW에 대해서도 이런 주장을 펼 것인지 궁금하다.
2007. 10. 4. 20:54

어르신들은 종이로 된 신문을 선호하신다. 인터넷 뉴스만 소비하는 나로써는 본가나 처가에서 만나는 종이 신문 - 주로 조중동 - 을 읽는 경험은 꽤나 신선하다. 사설이나 칼럼을 읽을 때면 더 그렇다.

어제였나, 동아일보에서 읽은 "민족은 主義를 초월하는가"란 제목의 칼럼은 대통령의 방북에 맞춘 글이었다. 필자는 1948년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실패와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 없이는 남북간의 진정한 평화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현실의 심연'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체제 -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 - 를 말한다.

화해와 교류는 좋은 것이며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잦은 만남도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를 통합시킬 수는 없다. 햇볕정책의 통일론은 이런 치명적 난점을 숨기고 있다. 남과 북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냉정한 인식만이 진정한 공존을 가능케 한다. 민족이 주의를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민족은 주의를 초월하는가", 윤평중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며 길가에 선 북한 인민들을 보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질감이 심정적으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이다지도 다르게 살고 있을까?' 그 대답은 대개 위의 칼럼에서처럼 민족보다 더 무서운 주체사상 또는 사회주의 탓으로 돌려진다. 바람직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 이런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리라.

그러나 남한에서 '민족'이란 가치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현실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양극화와 외국인 노동자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통일을 위해 세금을 더 올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낚시성 설문에 찬성할 사람은 사장님과 노동자를 막론하고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을 가로지르는 심연의 남쪽 벽은 20년 정도밖에 안된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자본주의로 파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은 주의를 초월하는가? 북한은 제쳐두고 남한에서 민족은 이해타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남북관계(햇볕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난은 '퍼주기' - 우리만 손해보는 일 - 라는 표현이며, 그런 표현을 즐겨 하고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쪽이 원하는 실질적인 효과는 자본주의 체제의 침투를 통한 개방 또는 체제 전복일 것이다. 어쨌든 이익이 남는 장사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그것은 내가 읽은 동아일보 칼럼의 결론이 내게 공허한 얘기로 들리는 이유이다. 이미 화석화된 민족의 통일이란 주장을 그렇게 공들여 비판하는 이유는 뭔지. 혹시 이 칼럼은 '통일-통합-공존'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비약을 통해, 남북한의 공존 역시 현재 북한 체제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민족간의 진정한 공존이 한 체제로의 통일로써만 가능할까?

분단 이후, '통일'이란 말만큼 정치적으로 오염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결국 주장하는 집단들이 거두어 들이기마저 어렵게 된 '통일'이란 정체 모를 미래 대신, 나는 '평화 공존'이란 표현을 더 좋아한다. '평화'라는 것 역시 그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우리 나라를 자랑스러워한다. 자신이 살기에 더 나은 나라를 위해 노력과 고민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도 자신들이 만들어온 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록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남북한이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 방명록에 남긴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인민은 위대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 9. 30. 00:59
어느 게시판에서 본 이 표현(제목)을 자꾸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한테는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나라만 잘 살게 하면 돼."라며 이명박을 지지하는 20대 기간제 교사인 누이의 선택도 곱씹어 본다. 그녀의 말은 힘든 현실 속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20대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과 집단
개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따른다. 당연한 일이다. '나'란 존재는 단지 내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총합일 뿐이라는 극단적 견해를 따르지는 않더라도, 합리적인 이성을 가정한다면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수렴한다. 따라서 서로 대립하는 집단에 속한 개인들간의 이해관계도 대립할 수밖에 없다.

신기한 사회 통합
그런데 어떻게 재벌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같은 사람을 지지할 수 있을까? 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는데 정치적으로는 계급을 뛰어넘는 사회 통합이 가능하다니.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1.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놀라운 경제정책
2. 양쪽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화해시킬 수 있는 대단한 리더십
3. 양쪽의 비위를 맞추는 일관성 없는 사탕발림

위대한 국민
나는 3번이 정확한 이유인 것 같지만 주위에 함부로 얘기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건 다수 국민들이 거짓말에 속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위대해서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승만은? 박정희는? IMF는? 황우석은? 물론 위대한 국민들은 이런 잘못들을 결국은 바로잡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리긴 했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만 목숨과 노력을 바쳤던 '위대한 국민'을 믿는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지지율이 높을수록 국민들의 위대함을 더 강조한다.

다수, 대세, 정답?
그렇게 위대한 우리 나라 국민들의 성향이지만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표 방지 심리'와 '대세론'이라는 정치 행태다. 자신의 선택이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하게 되는 것을 왜 그리 꺼리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정치적 다수가 어떻게 대세라는 감투를 거저 얻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시험을 하도 많이 치르다 보니 투표에서도 정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어쨌든 그 결과로 원래 지지하지도 않던 다수이자 대세에 억지로 끼어들면 무슨 이익이 있는 건지...

그러다 보니...
먹고살기 힘들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우익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먹고살기 편하다고 부자가 좌익을 찍는 것은 본 적은 없다. 참여정부 들어 아파트 값이 그렇게 올랐다지만 그런 지역에서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언제나 바닥이다. 야당이 집권했다면 더 오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같은 야당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뭘까?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돼 버린 마당에 계급에 대한 자부심까진 무리라 치더라도 현실 인식은 정확해야 할텐데, 먹고살기 힘드니 그것마저 언론이라는 것들에게 맡겨버린 걸까. (예로 든 아파트 값 얘기는 비정규직 비율로도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건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

정치에 대한 환상
정치가 모든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공자님도 알고 계셨다.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주자(朱子)의 주석에는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필시 구합(苟合, 또는 迎合)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불선(不善)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마을의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행(行)에 실(實)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재벌이 좋아하고 비정규직이 또한 미워하지 않는 정치인이라... (반대로, 비정규직이 좋아하고 재벌이 미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있을 수 없다. 가진 쪽은 현실을 직시하니까.) 苟合 또는 迎合을 요즘 정치 용어로 표현하자면 포퓰리즘이 될 것이다.

선택의 문제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것은 이 나라를 자신과 자신의 집단이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디 모든 후보들이 솔직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이라도 냉정하기를. 어차피 옳고 그른 것이 없는 정치적 선택에서 국민들이 그 결과를 '자신의' 미래로 그려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내가 원하는 정치, 내가 바라는 미래를 선택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소수에 속해 당장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의 선택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누이동생에게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부모님도 이미 너와는 아주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일 뿐. 나의 이익은 내가 지켜야 하는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며 선택해 보자. 먹고살기 힘들지만 고민한 만큼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