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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4. 20:54

어르신들은 종이로 된 신문을 선호하신다. 인터넷 뉴스만 소비하는 나로써는 본가나 처가에서 만나는 종이 신문 - 주로 조중동 - 을 읽는 경험은 꽤나 신선하다. 사설이나 칼럼을 읽을 때면 더 그렇다.

어제였나, 동아일보에서 읽은 "민족은 主義를 초월하는가"란 제목의 칼럼은 대통령의 방북에 맞춘 글이었다. 필자는 1948년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실패와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 없이는 남북간의 진정한 평화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현실의 심연'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체제 -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 - 를 말한다.

화해와 교류는 좋은 것이며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잦은 만남도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를 통합시킬 수는 없다. 햇볕정책의 통일론은 이런 치명적 난점을 숨기고 있다. 남과 북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냉정한 인식만이 진정한 공존을 가능케 한다. 민족이 주의를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민족은 주의를 초월하는가", 윤평중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며 길가에 선 북한 인민들을 보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질감이 심정적으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이다지도 다르게 살고 있을까?' 그 대답은 대개 위의 칼럼에서처럼 민족보다 더 무서운 주체사상 또는 사회주의 탓으로 돌려진다. 바람직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 이런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리라.

그러나 남한에서 '민족'이란 가치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현실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양극화와 외국인 노동자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통일을 위해 세금을 더 올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낚시성 설문에 찬성할 사람은 사장님과 노동자를 막론하고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을 가로지르는 심연의 남쪽 벽은 20년 정도밖에 안된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자본주의로 파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은 주의를 초월하는가? 북한은 제쳐두고 남한에서 민족은 이해타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남북관계(햇볕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난은 '퍼주기' - 우리만 손해보는 일 - 라는 표현이며, 그런 표현을 즐겨 하고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쪽이 원하는 실질적인 효과는 자본주의 체제의 침투를 통한 개방 또는 체제 전복일 것이다. 어쨌든 이익이 남는 장사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그것은 내가 읽은 동아일보 칼럼의 결론이 내게 공허한 얘기로 들리는 이유이다. 이미 화석화된 민족의 통일이란 주장을 그렇게 공들여 비판하는 이유는 뭔지. 혹시 이 칼럼은 '통일-통합-공존'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비약을 통해, 남북한의 공존 역시 현재 북한 체제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민족간의 진정한 공존이 한 체제로의 통일로써만 가능할까?

분단 이후, '통일'이란 말만큼 정치적으로 오염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결국 주장하는 집단들이 거두어 들이기마저 어렵게 된 '통일'이란 정체 모를 미래 대신, 나는 '평화 공존'이란 표현을 더 좋아한다. '평화'라는 것 역시 그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우리 나라를 자랑스러워한다. 자신이 살기에 더 나은 나라를 위해 노력과 고민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도 자신들이 만들어온 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록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남북한이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 방명록에 남긴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인민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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