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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1. 00:31
게으른 SF 팬인 나에게 누군가 인상 깊은 작품 한 구절을 읊으라면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솔라리스
“그러나 나는 놀랄 만한 기적의 시대는 영원히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마지막 문장, 샘기획 옮김, 1992년 청담사판.

멋있지 않나요? 몇 주 전 이 작가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사이버리아드>를 지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어서 대표작인 <솔라리스>도 나왔더라구요. 오멜라스에서 정성들여 만든 책(‘초판 한정 양장본’)인지라 턱없이 비싼 값에도 불평할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소설의 맨 뒷장부터 펼쳤죠. 유명한 번역자님의 손을 거친 그 구절을 다시 만나려고요.

솔라리스 오멜라스판
“그러나 나는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영원히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 – 김상훈 옮김, 2008년 오멜라스판.

‘놀랄 만한 (경이로운?) 기적의 시대’가 ‘잔혹한 기적의 시대’로 변해버렸습니다. 번역 원본인 영어판에는 ‘cruel miracle’이라고 적혀 있나 봅니다. 알아보니 1992년의 번역 원본은 러시아어판을 번역한 일어판이었다는군요. 아, 스타니스와프 렘은 ‘폴란드’ 작가입니다. 어쨌든 제대로 된 이 번역본으로 인해 철없는 대학생이 맘대로 상상하고 십수년간 간직해왔던 그 멋있는 문장의 의미는 오해 혹은 비약이었을 가능성이 커졌다고나 할까요.

내가 가진 청담사판 책 바닥에 찍힌 도장의 숫자들을 보면, 이 책을 산 건 1993년 12월31일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색이 바랜 옛날 책이지만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 않고 챙기면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소설을 잘 이해한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오해나 안하면 다행이지요. 한편으로 위안도 삼아봅니다. <솔라리스>를 폴란드어로 읽을 독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냐고, 영어판이든 일어판이든 영어-한국어판이든 러일한판이든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널리 알려져 있고 작가 역시 솔직히 얘기했더군요. “나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인간의 개념이나 이미지나 사고로 환원될 수 없는 것과 인간이 조우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시 읽다보니 번역된 외국어 문학을 감상하는 내 처지 같기도 하고, 요즘같이 누군가/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에 대한 예언으로 읽히기도 하니 나의 오독은 부끄러움을 모르나 봅니다.

여담이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동명 영화는 보다가 잠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쓴 글, "SF를 읽고싶다."가 생각나네요.)

2008. 6. 2. 15:49
[albook|small-gif|right|8988105125|width=100]오랫동안 읽지 않고 책장에 꽃아만 뒀던 책들에 자꾸 관심이 간다.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많은 정치 이론가들이 권력과 폭력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모든 정치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그리고 권력의 궁극적인 본성은 폭력이다" - 라이트 밀즈

"국가는... 정당한, 다시 말해서 정당하다고 주장되고 있는, 폭력 수단에 기초를 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 막스 베버

"모든 국가는 폭력에 기반한다." - 레프 트로츠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 마오쩌둥

좌파와 우파가 정치 이론에서 합의를 이룬 듯 보이는 이런 주장 - 폭력 violence은 권력 power의 한 가지 형태이다 - 에 대한 반론은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책, <폭력의 세기>에서 제목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나 아렌트가 고통스럽게 탐구하며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과 폭력은 대립적이다. 즉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 다른 하나는 부재한다.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운 곳에서 나타나지만, 제멋대로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권력의 소멸로 끝난다. 이것은 폭력의 대립물을 비폭력으로 사고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래서 비폭력적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동어반복이다. 폭력은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은 권력을 전혀 생산할 수 없다. (90쪽)

그러나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폭력에 의지할 때, 권력과 폭력의 동일시는 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렇지만 권력을 명령과 복종으로 환산하여 사고하고 싶어지고, (......) 권력과 폭력을 동등하게 다루려는 유혹에 특히 빠지기 쉽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만 한다. (78쪽)

사람들은 지금 광장에 모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양한 목소리들 가운데 나는 현 정부가 권력을, 권력의 정당성 legitimacy을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를 듣는다. 청와대를 향하는 군중을 저지하기 위한 물대포라는 폭력은 정당화 justification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폭력의 목적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권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당성이다."(84쪽) 그리고 "권력을 생성시켰던 집단이 사라지는 순간에, '그의 권력'도 소멸한다."(74쪽)

우리는 (......) 모든 권력의 감소가 폭력의 공개적인 초대라는 것 - 권력을 쥐고 있지만 자신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 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통치자들이든 피통치자들이든지 간에, 권력을 폭력으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항상 깨닫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 을 알고 있으며, 모르고 있다면 알아야만 한다. (131-132쪽)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질 수 있는 촛불은, 그래서 권력과 폭력이 양립 불가능함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8. 5. 28. 02:08
[albook|small|right|8952737911|width=100]며칠째 밤마다 인터넷으로 현장 소식을 보느라 잠을 설친다.
오늘은 눈을 붙이기 전에 소설책을 꺼내들었다.

어슐러 K. 르귄, <바람의 열두 방향>
뒤에서 두번째 실린 단편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축제와 온갖 즐거움으로 가득한 행복의 도시 오멜라스**. 그 도시의 지하실에 갇혀 있는 한 아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의 존재를 안다.
그러나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중략)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오멜라스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이 아이와 맞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향한 부당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면서 흘리던 눈물은 현실의 끔찍한 정의를 알아차리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메말라 간다. 하지만 오멜라스 사람들의 눈물, 분노, 자비를 베풀려는 시도 그리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오멜라스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진정한 근원이리라.

그러나 이 아이를 본 어떤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시를 떠난다.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그 사람들은 모두 혼자서 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상상하기 어렵고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곳이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조금 현실적으로, 조금 비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싸고 맛있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싶은, 팔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일몰 후 불법 집회는 공권력으로 엄중 대응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한 총선이 치뤄진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청계광장에 수 만명이 모여도 대운하와 재개발을 지지했던 국민들의 선택은 다음 투표까지 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몇 배의 경찰력과 보수 언론의 왜곡("좌파 세력의 반정부 폭력 시위...")으로 간단히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모인다.
어떤 집에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어떤 동호회는 신문에 광고를 낸다.
어떤 카메라는 현장을 중계하고,
어떤 시민들은 웃으면서 당당히 연행된다.

배후 세력을 아무리 찾아본들 헛수고리라. 가야할 길을 아는 사람들은 혼자서 가는 법이니까.

주)
* 이 책에 실린 마지막 단편의 제목은 여기서 얘기하지 말자. 작가 왈, "이 이야기는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 새로운 SF 전문 출판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2008. 1. 27. 22:50
[albook|small|right|8974271869|width=100]서점에서 눈에 확 띈 책이 있어 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생각의 오류, 토머스 키다

일단,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했는데, 양성으로 나왔다. 감염된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정보가 주어졌을 때, 실제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확률은 얼마쯤 될까?

- 실제로 감염되었을 경우, 이 검사에서는 100% 양성으로 나온다.
- 실제로 감염되지 않았는데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올 확률은 5%이다.
- 500명 중 1명 꼴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의료 종사자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처럼 대략 95%라고 대답한다면, 이 책은 아마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답은 약 4%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책 266-267쪽에서 요약)

이 책은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생각의 오류와, 그런 오류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초상현상, 초능력, 외계인 납치, 영매, 동종요법, 대체의학, 미래 예측 등의 여러 가지 사이비 과학 또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해부한다. 때문에 이 책이 강조하는,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만큼이나 사이비 과학의 구체적인 사례들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여섯 가지 문제'라고 저자가 친절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 옆 친구의 경험이 더 그럴듯하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 잘 들어맞는 것만 기억하고 빗나간 것들은 잊어버린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우연의 결과에 불과한데도 원인을 찾는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 보고 싶은 것만 본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 쉽게 떠오르는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 기억이 변하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런 생각의 오류들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인류의 진화 과정의 결과로 추측된다고 한다. 사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려는 태도가 경쟁에 유리했기 때문에, 단순한 우연의 결과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설명을 갖다붙이는 오류가 인간의 사고 과정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의 오류를 피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훈련밖에는 없는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에게 확률과 통계라는 과학적인 도구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일은 보통 사람들이 확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어떤 사람들은 왜곡된 통계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 제시한 바이러스 감염 확률의 문제는 조건부확률에서 도출된 베이즈 정리로 풀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500명 중 1명은 실제 감염자이므로 양성으로 나타나며, 나머지 499명 중 5%인 24.95명은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양성으로 나타난다. 검사 받은 사람이 양성으로 나타난 것은 이들 25.95(=1+24.95)명에 속한다는 얘기이고, 실제 감염되었을 확률은 1/25.95=0.0385... 즉, 3.85%이다.

책에서는 이 예와 관련하여 거짓말 탐지기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산부인과에서 행하는 수많은 기형아 검사들이 떠올랐다. 결국 돈이 더 드는 양수검사를 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검사들의 결과가 악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란 단어는 정확함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한계'라는 단어와 같이 다닐 때가 많다. 그러나 과학의 한계를 가장 많이 떠드는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펴는지, 그리고 그 주장을 어떤 근거로 뒷받침하는지를 보면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도구인 과학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언제나 의심하고 끝까지 확인하는 과학적 방법 이외에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켰는지.

책에 나온 경구들 중에서 둘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날 이 세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어리석은 자들은 확신에 차 있는 반면 지적인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긴 인생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실제와 견주어볼 때 우리의 과학은 모두 원시적이고 유치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과학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 - 아인슈타인
2007. 12. 3. 19: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잔의 정물화입니다. 이 그림을 20초 정도 주의 깊게 봐 주세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당신은 <암흑관의 살인>을 아주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암흑관의 살인> 세 권... 너무 두껍습니다. 커뮤니티 게시판 어딘가에서 그 '분량'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 독후감은 그 '분량' - 소설 내적으로는 느리디 느린 사건 진행의 시간, 또는 몽롱한 문체 - 에 대한 저 나름의 해석과 감상입니다.

1. 조금 더 어려운 틀린그림 찾기
<두뇌왕, 아인슈타인>이란 TV 오락 프로가 있습니다(이휘재와 박명수가 MC). 연예인들 불러 놓고 이른바 '두뇌단련' 게임을 푸는 겁니다. 예전 <브레인 서바이버>와 유사한 컨셉이죠. 나오는 게임은 기억력, 공간지각력, 연산능력 등을 테스트하는 간단한 것들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그 프로를 보다가 재미난 경험을 했습니다. 주어진 그림에서 없던 탑이 천천히 생기고, 또 있던 악보가 천천히 지워지는데도 출연자들은 (저도 마찬가지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원래 그림과 바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너무 쉬운 틀린그림 찾기가 되겠죠. 문제는 그림이 시간을 두고 아주 조금씩 바뀌고, 나중엔 바뀐 그림만 남기 때문에 그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시간', 그리고 '덮어쓰기' - 암흑관의 수수께끼(!)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2. 암흑관 퍼즐을 풀어 볼까?
불친절한 서술(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암흑관의 비밀, 구체적으로는 기이한 연회를 비롯한 분위기에 이끌려 이 기나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얘기한 일종의 퍼즐을 풀게 되는 거죠. 암흑관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그림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 보고, 자신의 두뇌연령 혹은 추리능력을 테스트하자! 뭐, 이런 겁니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이 변하는 그림을 다 보는데 며칠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사나흘 걸렸죠. 게다가 시험 칠 것도 아닌데 추리소설을 꼼꼼히 암기하며 읽을 리도 없잖아요. 가끔씩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귀찮을 뿐더러 책은 세 권으로 나뉘어 있고. 결국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인물 정도, 기껏해야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죠.

때문에 이 퍼즐을 잘 풀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력이 아니라 순간적인 장면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능력(<탐정학원Q>에 나오는 메구의 '순간기억능력')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 정도 분량의 책이 강제하는 독서의 '시간'과 '기억의 한계'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암흑관의 핵심은 서술트릭이지만, 감상 포인트는 복잡한 것 다 치우고 그냥 '분위기'... 저의 아쉬움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3. 세잔의 정물화
TV를 통해 그런 재미난 경험을 한 저는 비슷한 걸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위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처음과 달라졌는지 쉽게 알아차리셨나요?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은 그림이 처음 나타나고 20초입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으시다면 F5 키('새로 고침')를 눌러주세요. <암흑관> 두뇌단련 게임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답니다.
[albook|small|center|8959750840|width=120]
2007. 10. 25. 12:05
[albook|small|center|8925803623|width=120]
1. 파라오의 목걸이/인간 폭죽
컬래버레이션 기획이라던 '파라오의 목걸이'는 CMB 6권을 봐야 완전한 평가가 가능할 듯. 지금으로서는 용두사미 격인 에피소드. 반면, '인간 폭죽'은 (대충 붙인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충격적인 그림에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면 공통의 주제를 찾을 수 있는데...

구상시회권
2. 구상시회권(九相詩繪卷, 쿠소시에마키)
참고: 구상시회권과 마카브르... (오른쪽 그림도 여기서 퍼왔습니다.)
'인간 폭죽' 편의 소재입니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이 아니라 예술의 아이디어를 얻는 사람이 나옵니다.

3. 투포비라우스키 증후군 또는 이름 붙이기
"나는 손에 넣었어!! 생명을 넘어서는 힘을···. 나만이···!!"
"네가 특별한 게 아니야. 전형적인 증상이지."
어둠을 봉하고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주문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4. 결론: 말의 힘
'파라오의 목걸이'에서,
과학은 분명 유사 과학을 두들길 힘을 가지고 있어. 어디가 잘못됐고 무엇이 옳은지를 설명할 힘 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말은···, 이미 잃었다구.
'인간 폭죽'에서,
"어둠을 죽이려면 이름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 어둠은 어둠이 아니게 되죠."
그러나 주인공 토마의 '이름 짓기'가 헤쳐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2007. 10. 6. 01:34

몇 년 사이에 좁은 의미에서 '일본 미스터리(추리)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을 나름 꽤 많이 읽었습니다. 정리해 보니 단편집을 제외하고 책으로 44권이더군요 (상하, 1~3권 등은 하나로 쳐서).

이걸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나의 취향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먼저 작품(표제작)의 출간 연도를 살펴봤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했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별

역시 최근작들을 좋아합니다. 작가별 통계에서도 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작품이 2000년대에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40, 50년대에 솟아 오른 막대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영향입니다. 번역된 대표작들(4권)은 다 읽었으니까요. 여러분도 여유 있을 때, 자신이 읽은 작품의 출간 연도를 한 번 살펴보세요.
(몇몇 작품들의 시대를 생각하다보니, 미스터리물의 구성은 90년대 후반을 경계로 해서 휴대폰의 보급 이전/이후 이렇게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작가별로 보면 저의 취향이란 것이 조금 더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별

다들 좋아하시는 작가들이지요. 적절한 구분인지 모르겠지만, 고전, 사회파, 신본격 모두를 골고루 읽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합리적인 수수께끼와, 사람들의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최근 읽은 라이트 노벨 쪽 작가들은 두 권 이상 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쪽이 노리는 독자가 아닌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스터리 장르에 국한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포함시킨 온다 리쿠의 <여섯번째 사요코> 같은 경우는 조금 아리송...) 아직 채 읽어보지 못한 작가들도 몇몇 있습니다.
최근 관심이 식어서인지 책을 사는 게 조금 뜸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매일 이곳저곳 눈팅하며 정말 좋은 책을 계속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소개, 짧은 감상, 독후감을 써 올리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책 읽기 좋은 시원하고 맑은 가을입니다~

2007. 9. 14. 15:47
[albook|small|right|8954603475|width=120]올해 4월에 세상을 떠난 미국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의 마지막 작품이 나왔다.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커트 보네거트, 2005

이 얇은 에세이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구는 이것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의심이 가면, 발을 빼라."
My father said, "When in doubt, castle."

Copyright © 2007, Kurt Vonnegut & Origami Express LLC.


"발을 빼라"라고 번역된 "castle"은 체스 용어(캐슬링)이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 나온다. 간단히 말하자면, 왕(King)이 성(Rook) 뒤로 숨는 것이다.

사업, 주식, 정치, 인간 관계, 어디서든 명심해야 할 금언으로 손색이 없다. 제때 발을 못 빼서 함께 망가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에. (이 책에 나오는 주옥같은 문장(도판)들은 Vonnegut.comscreenprint 메뉴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

요즘 한 대통령 후보가 사석에서 밝힌 '인생의 지혜'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이 되실 분의 그것이라 그런지 평범한 소시민이 공감하는 생활의 지혜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분이야 어쨌든 나는 의심이 가는 사람에게선 발을 빼겠다.
2007. 9. 13. 23:19
[albook|small|left|8990739667|width=120]대유괴, 덴도 신, 1978

도서 증정 이벤트에 떨어지자마자 질러 하룻밤만에 다 읽었습니다. 동화같은 서스펜스랄까... 이 비현실적인 (몸값 100억엔!) 이야기 속에서 저는 국가권력을 조롱하는 유괴범 일당들을 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미디로 시작해서 블랙유머를 거쳐 미스터리로 막을 내리는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과연 몸값을 받을 수 있을지, 할머니의 속셈은 뭔지... 경찰과 방송국을 둘러싸고 벌이는 머리싸움은 흡사 <데스노트>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중간에 나와서 망신만 당하는 국회의원과 미군 사령관도 쓴웃음을 안겨주네요. 몸값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람들에게 든 (얼마인지 모를) 돈이 너무나 아깝다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추석 시즌을 노린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각색을 거쳐서 가족들이 함께 보는 코미디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납치된 할머니의 발칙한(!) 국가관을 소설로 만나 보는 것도 나름 색다른 재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책 뒤 표지에 이게 뭡니까? 편집하신 분도 100억엔은 농담이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대유괴 뒤 표지
(물론 곧 수정판이 나온 것 같습니다.)
2007. 9. 12. 02:28
[albook|small|right|8991799159|width=120]최근에 읽은 흥미로운 책이 있다.

인류의 미래사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W. 워런 와거

간단히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2200년까지의 역사라는 형식을 빌린 역사서, 연구서, 예언서, 또는 과학소설이다. 역사적인 주요 사건들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형식이라 흥미를 끄는 소설적 장치는 없지만, '간주곡'이란 이름으로 각 장 사이에 포함된 짤막한 이야기들은 역사책이 소홀히 하기 쉬운 개인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인류의 미래사는 크게 세 번의 변화를 겪는다.
  1. 세계무역컨소시엄(경제)과 지구국가연합(정치)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성립
  2. 경기 침체와 환경 파괴, 그리고 핵전쟁('대재앙')으로 인한 지구국가연합의 붕괴와 사회주의적 세계화(세계연방) 질서로의 이행
  3. 분리주의, 저항 운동을 통한 세계연방의 해체와 작은 공동체의 시대 시작
각각의 변화는 이 책을 구성하는 세 부의 제목처럼 극단의 시대, 평등의 시대, 자유의 시대를 연다. 그걸 자본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어떤 이들에게는 한 물 간 이념의 끝자락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몇 십년 뒤면 쓰레기가 될 미래 예측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은, 변화의 시간적 순서를 잠시 무시하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미래의 단서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2150년 경에야 나타난다는 공동체 중심의 무정부 사회가 꼭 그 때부터만 존재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사회주의 체제 역시 아무리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했다고는 하나, 그 사회주의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이후에 찾아올 새로운 질서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어쨌든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가 그 한계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상황에서 미래의 다양한 대안들은 그 자체로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albook|small|right|8925212331|width=120]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흡인력은 있지만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게다가 조금 비슷하면서도 훨씬 재미있는 책이 있다. 그것은 20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SF 로봇 액션 코믹 - <라이드백>이다. 나는 전에도 이 만화책과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짬뽕한 글(라이드백을 타고 남쪽으로 튀자!)을 썼다.

이 만화에는 '세계통치기구군'이란 군사조직이 나온다. 이름하여 GGF (Global Government Force). 이 GGF를 통괄하는 곳은 '세계통치기구'로써, '독립', '평등', '안정'의 세 이념에 기반하여 국가와 조직으로부터 독립하여 세계에 평등과 안정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세계통치기구 가맹국은 비무장 경찰력을 제외한 무력을 전적으로 GGF에 의존한다. 그러니까 GGF는 가맹국들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힘이라고 할까. 이 만화에서 일본의 반정부 학생운동은 이런 체제에 반대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세계통치기구에 대한 저항과 테러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배경 자체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노골적 알레고리이기는 하나, (경제적 의미가 지워진) 세계통치기구의 존재는 <인류의 미래사>가 묘사하는 세계 정부(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의 모습과 쉽게 겹쳐진다. 저항의 운동을 포함해서. 그리고 주인공들이 목적 없이 추구하는 이상은, 기존 체제와 충돌하면서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고 나는 맘대로 추측한다).

<인류의 미래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는 핵전쟁 이후 태어나 사회주의 세계연방의 평등 정책과 지구 환경 회복을 직접 겪은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공동체주의에 의해 세계연방이 해체되는 대목에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쉬움을 짙게 드러낸다. 그러나 얘기를 듣는 손녀는 (유전자 요법의 영향인지) 훨씬 똑똑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이 점 또한 잊으면 안 되겠지요. 우리의 이 모든 노력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아니면 공동체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세계 질서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세계 질서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미래는, 미래를 현재로 살아갈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