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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3. 19:08
[일상/독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당신은 <암흑관의 살인>을 아주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암흑관의 살인> 세 권... 너무 두껍습니다. 커뮤니티 게시판 어딘가에서 그 '분량'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 독후감은 그 '분량' - 소설 내적으로는 느리디 느린 사건 진행의 시간, 또는 몽롱한 문체 - 에 대한 저 나름의 해석과 감상입니다.
1. 조금 더 어려운 틀린그림 찾기
<두뇌왕, 아인슈타인>이란 TV 오락 프로가 있습니다(이휘재와 박명수가 MC). 연예인들 불러 놓고 이른바 '두뇌단련' 게임을 푸는 겁니다. 예전 <브레인 서바이버>와 유사한 컨셉이죠. 나오는 게임은 기억력, 공간지각력, 연산능력 등을 테스트하는 간단한 것들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그 프로를 보다가 재미난 경험을 했습니다. 주어진 그림에서 없던 탑이 천천히 생기고, 또 있던 악보가 천천히 지워지는데도 출연자들은 (저도 마찬가지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원래 그림과 바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너무 쉬운 틀린그림 찾기가 되겠죠. 문제는 그림이 시간을 두고 아주 조금씩 바뀌고, 나중엔 바뀐 그림만 남기 때문에 그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시간', 그리고 '덮어쓰기' - 암흑관의 수수께끼(!)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2. 암흑관 퍼즐을 풀어 볼까?
불친절한 서술(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암흑관의 비밀, 구체적으로는 기이한 연회를 비롯한 분위기에 이끌려 이 기나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얘기한 일종의 퍼즐을 풀게 되는 거죠. 암흑관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그림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 보고, 자신의 두뇌연령 혹은 추리능력을 테스트하자! 뭐, 이런 겁니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이 변하는 그림을 다 보는데 며칠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사나흘 걸렸죠. 게다가 시험 칠 것도 아닌데 추리소설을 꼼꼼히 암기하며 읽을 리도 없잖아요. 가끔씩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귀찮을 뿐더러 책은 세 권으로 나뉘어 있고. 결국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인물 정도, 기껏해야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죠.
때문에 이 퍼즐을 잘 풀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력이 아니라 순간적인 장면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능력(<탐정학원Q>에 나오는 메구의 '순간기억능력')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 정도 분량의 책이 강제하는 독서의 '시간'과 '기억의 한계'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암흑관의 핵심은 서술트릭이지만, 감상 포인트는 복잡한 것 다 치우고 그냥 '분위기'... 저의 아쉬움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3. 세잔의 정물화
TV를 통해 그런 재미난 경험을 한 저는 비슷한 걸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위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처음과 달라졌는지 쉽게 알아차리셨나요?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은 그림이 처음 나타나고 20초입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으시다면 F5 키('새로 고침')를 눌러주세요. <암흑관> 두뇌단련 게임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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