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소개 (4)
일상 (168)
여행 (5)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08. 3. 9. 18:40

이 글의 제목만 보고도 제가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눈치채신 분이 있을 겁니다. 토론이 될 수도, 논쟁이 될 수도, 진부할 수도 있는 주제 - 우리말 바로쓰기 - 입니다만 같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1. 생각하다/생각되다 - 그 생각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일본 학자가 1982년에 쓴 책에서 조금 길게 인용하겠습니다. (밑줄은 제가 그었습니다.)

일본어로 쓴 글에 주어가 적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다.
주어가 ‘생략’된다고 하는 견해는 본래 주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서구 문장을 모델로 삼은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주어는 문맥상 알 수 있으면 특별히 필요할 때 이외에는 표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일본어에 더 잘 맞는 생각이다.
또 하나, 일본어에는 주어를 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 예로, 일본어 고유의 ‘자발(自發)의 조동사’가 사용될 경우가 그렇다. 내가 이 책과 같은 글을 쓰면서, “......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쓰면 말한 것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라고 생각된다”라고 쓰면 왠지 책임이 경감되는 듯하여 약간 자신이 없을 때는 그만 이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생각된다’라는 표현을 쓰면 생각하는 주체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일본인들은 ‘하다’가 아니라 ‘되다’라는 동사를 즐겨 쓴다. 회의석상에서 보고할 때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저항이 있지만,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면 무난히 통과된다고 한다. 채소 가게 아저씨가 “싸졌습니다”라고 말할 때, ‘싸졌다’는 행위에는 당사자인 채소 가게 아저씨뿐 아니라 동업자도 손님도 얼마간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라고 생각된다”라고 쓰면, 그 내용은 필자 한 사람의 생각만이 아니라 다른 논자도 독자도 얼마간 그 생각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 도서출판 일빛, 2003, pp.192-193)


여기서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습니다. 우리말에서 ‘생각되다’가 그렇게 널리 쓰이는 까닭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그러나 ‘생각되다’를 아예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곤란한 것이, 주변 상황이나 증거들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경우에는 ‘생각되다’가 꽤 쓸모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이런 예문이 있습니다.

그가 범인으로 생각되어 경찰에 신고했다.


“그를 범인으로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했다.”와 비교하면 앞에서의 ‘생각됨’이 더 객관적으로 들립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그를 봤다면 범인으로 생각했을 거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언제부터 이런 의미가 덧붙여졌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어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많은 경우, ‘생각되다’를 ‘생각하다’로 쉽게 바꿔서 더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전에 있는 다른 예문들을 바꿔 보겠습니다.

이번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될지 궁금했다. -> 이번 결정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옳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밀고 나가라. ->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라.
나는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 나는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에서도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가능한 수동태(우리말에서는 피동문)를 피하라고 합니다. 문장은 명확하고 단순할수록, 그래서 이해하기 쉬울수록 좋으니까요.
예전에 어떤 커뮤니티에서 ‘생각되다’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쪽에 서서 짧은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생각되다’란 말을 쓸 때, ‘생각하다’로 바꿀 수는 없는지 잠깐 생각해 봅니다.

2. 되어지다, 보여지다, 이런 것도 유행인가요?

‘되어지다’라는 말이 왜 틀렸는지는 검색해보니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복 피동’이기 때문입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blua&folder=8&list_id=3750270

그러나 이 표현은 너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연구보고서에서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동료들과의 대화 같은 입말(구어)에서는 ‘되어지다’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책임 떠넘기기로 볼 수 있을까요? 문자로 오랫동안 남을 글에서 ‘생각한다’, ‘된다’, ‘본다/보인다’라고 단정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행동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잘못된 표현인데 왜 이렇게 유행처럼 번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되어지다(X) -> 되다
보여지다(X) -> 보이다, 보다
판단되어지다(X) -> 판단되다, 판단하다
생각되어지다(X) -> 생각되다, 생각하다
잊혀지다(X) -> 잊히다 (‘잊혀진 계절’이란 유명한 노래가 있죠.)
나뉘어지다(X) -> 나뉘다
불리워지다(X) -> 불리다


단, 비슷한 형태지만 옳은 표현도 있습니다.

좁혀지다 – ‘잊혀지다’와는 다른 경우입니다. ‘좁히다’는 피동이 아니라 사동형이거든요.
여겨지다 – ‘생각되다’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가능한 ‘여기다’로 대신하면 좋겠지요.


3. 쉽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씁시다

다음은 한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서 ‘되어지/되어진/되어집’으로 검색해서 나온 표현들 중 일부입니다. (다른 게시판에서는 훨씬 더 많이 검색됩니다.)

상처와 아픔은 사람으로 회복되어집니다.
양준혁 선수의 기록은 계속되어집니다.
경기력만큼은 작년보다도 못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한번 해 보시는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개인 사용자에 한해 무료로 제공되어집니다.
제대로 평가되어지지 않게 됩니다.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되어지네요.
비로소 완성되어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 허물이 되어지지 않기를...
대표곡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벌써 10여년째 계속되어지고 있는.. 지금도 가끔 논란이 되어지는
기존 보컬들과는 차별화되어지는 찢어질듯한
정신적으로 잘 무장되어진 팀인가 하는 생각이
강팀과 약팀으로 구분되어진건 사실입니다.
연습일정은 시작되어진다.


‘보여지/보여진/보여집’으로 검색해보니 역시나 비슷한 수가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유행입니다. ‘-어지-‘를 집어넣는다고 문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이렇게 널리 쓰인다면 수십 년 뒤에는 국어 문법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앞서의 ‘생각되다’와는 다르게, 저는 이런 표현을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Pgr21.com 자유게시판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