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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사'에 해당되는 글 1건
2007. 9. 12. 02:28
[albook|small|right|8991799159|width=120]최근에 읽은 흥미로운 책이 있다.

인류의 미래사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W. 워런 와거

간단히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2200년까지의 역사라는 형식을 빌린 역사서, 연구서, 예언서, 또는 과학소설이다. 역사적인 주요 사건들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형식이라 흥미를 끄는 소설적 장치는 없지만, '간주곡'이란 이름으로 각 장 사이에 포함된 짤막한 이야기들은 역사책이 소홀히 하기 쉬운 개인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인류의 미래사는 크게 세 번의 변화를 겪는다.
  1. 세계무역컨소시엄(경제)과 지구국가연합(정치)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성립
  2. 경기 침체와 환경 파괴, 그리고 핵전쟁('대재앙')으로 인한 지구국가연합의 붕괴와 사회주의적 세계화(세계연방) 질서로의 이행
  3. 분리주의, 저항 운동을 통한 세계연방의 해체와 작은 공동체의 시대 시작
각각의 변화는 이 책을 구성하는 세 부의 제목처럼 극단의 시대, 평등의 시대, 자유의 시대를 연다. 그걸 자본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어떤 이들에게는 한 물 간 이념의 끝자락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몇 십년 뒤면 쓰레기가 될 미래 예측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은, 변화의 시간적 순서를 잠시 무시하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미래의 단서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2150년 경에야 나타난다는 공동체 중심의 무정부 사회가 꼭 그 때부터만 존재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사회주의 체제 역시 아무리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했다고는 하나, 그 사회주의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이후에 찾아올 새로운 질서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어쨌든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가 그 한계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상황에서 미래의 다양한 대안들은 그 자체로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albook|small|right|8925212331|width=120]그러나 불행히도, 이 책은 흡인력은 있지만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게다가 조금 비슷하면서도 훨씬 재미있는 책이 있다. 그것은 20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SF 로봇 액션 코믹 - <라이드백>이다. 나는 전에도 이 만화책과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짬뽕한 글(라이드백을 타고 남쪽으로 튀자!)을 썼다.

이 만화에는 '세계통치기구군'이란 군사조직이 나온다. 이름하여 GGF (Global Government Force). 이 GGF를 통괄하는 곳은 '세계통치기구'로써, '독립', '평등', '안정'의 세 이념에 기반하여 국가와 조직으로부터 독립하여 세계에 평등과 안정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세계통치기구 가맹국은 비무장 경찰력을 제외한 무력을 전적으로 GGF에 의존한다. 그러니까 GGF는 가맹국들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힘이라고 할까. 이 만화에서 일본의 반정부 학생운동은 이런 체제에 반대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세계통치기구에 대한 저항과 테러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배경 자체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노골적 알레고리이기는 하나, (경제적 의미가 지워진) 세계통치기구의 존재는 <인류의 미래사>가 묘사하는 세계 정부(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의 모습과 쉽게 겹쳐진다. 저항의 운동을 포함해서. 그리고 주인공들이 목적 없이 추구하는 이상은, 기존 체제와 충돌하면서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고 나는 맘대로 추측한다).

<인류의 미래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는 핵전쟁 이후 태어나 사회주의 세계연방의 평등 정책과 지구 환경 회복을 직접 겪은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공동체주의에 의해 세계연방이 해체되는 대목에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쉬움을 짙게 드러낸다. 그러나 얘기를 듣는 손녀는 (유전자 요법의 영향인지) 훨씬 똑똑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이 점 또한 잊으면 안 되겠지요. 우리의 이 모든 노력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아니면 공동체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세계 질서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세계 질서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미래는, 미래를 현재로 살아갈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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