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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20. 23:12
전에 TV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다룬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수백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음독 자살을 하려다 응급실에 왔다. 그런데 완치를 위해서는 값비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주인공은 당연히 보호자에게 수술을 권하려 하지만 선배가 말린다. 자살 기도에 대한 치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돈드는 수술을 권유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란 얘기였다. 우리의 순진한 주인공은 그 사실에 놀라면서, 기록에서 '자살 기도'를 지워버리면 어떨까 고민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아쉽지만 당연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입장에서, 안그래도 자살률이 높아가고 있는데, 자살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즉각적 반응이 아닐까 싶다.

자살 사망자 추이

©한겨레

어제 뉴스에 자살 방지 정부 대책이 나왔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훨씬 많다니 문제가 크긴 크다. 대책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생명 존중 인식 개선 캠페인, 초·중·고교에서 자살 예방교육 확대
  • 자살 관련 유해 사이트 감독 강화
  • 자살 방지 긴급 상담전화 요원 확충
  • 농약 농도 하향 조정, 건물·다리 등에 자살 방지 펜스 설치 의무화
그리고 "자살 시도자가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대부분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친 사람의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눈에 띈다. 이쯤 되면 "외과의사 봉달희"의 그 사건은 병원에서 일상다반사였단 소리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인이나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이런 정부 대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대부분의 개입은 불필요한 비용만을 낳고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자살이란 선택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음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어쨌든 자살의 증가는 분명히 사회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환자의 서류를 조작하면 안되지만 건강보험 정책은 바꿔야 한다. 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결국 개인적 선택의 대상과 결과가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 존중, 인간 존엄의 사상은, 당연한 가치처럼 얘기되다가도, 어느 순간 그 근거가 너무나 초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 어떤 사람은 타인을 죽인다. 어떤 사람(사회, 국가)은 그것을 방관한다. 사형제는 당연시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면 자살 방지 대책은 더 현실적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 존중 인식이 부족해서, 자살이 나쁘다는 걸 안배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다. 자살 사이트, 농약, 낮은 다리 난간은 단지 문턱일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살 충동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40-50대 가장이라고 한다.
돈이 없어 죽겠다는 사람에게는 돈을 줘야 한다.
얼마를?
그 사회가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해 부여할 수 있는 가치만큼.

굶어 죽는 사람들을 살리려면 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돈이 없어 죽겠다는 사람을 설득할 자살 상담 센터는 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마이크로 크레딧이든 뭐든). 이런 대책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제도의 악용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걸 막으면서, 아니면 감수하고서라도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돈 얼마 때문에 자살한다는 얘기는, 그 공동체가 그만큼의 돈을 위해 사람의 생명 하나를 버렸다는 말이다. 정부 대책이 이모양인 까닭은, 정부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딱 그만큼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로 공부한 똑똑한 사람들을 공무원 시키면 뭐하나...

본질은 단순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자살 방지 대책을 접한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