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독서

라이드백을 타고 남쪽으로 튀자!

느린시간 2006. 8. 27. 00:22
[albook|small-jpg|left|8952894200|]라이드백 1-5 (원제: RIDE BACK, 2004-2005), 카사하라 테츠로, 대원씨아이, 2005-2006 (소학관의 월간 IKKI에서 연재 중, 현재 6권까지 출판).
남쪽으로 튀어! 1,2 (원제: Southbound, 2005),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6.

애니메이트 동호회 이야기 게시판에서 신중관님의 글을 읽고 “라이드백”을 5권까지 샀습니다. 남편 닮아 역시 책을 잘 지르는 아내는, 서점에서 “남쪽으로 튀어!” 두 권을 한꺼번에 들고 왔습니다. (지금 1권 값에 2권까지 껴 주네요.) 우연히도 두 책은 통하는 게 있습니다. “라이드백”은 2020년 일본의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남쪽”은 과거 급진 좌익에 몸담았던 부부가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일본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SF라고는 하나, “라이드백”은 분명 일본의 60년대를 그리고 있으니, 둘 모두 지금은 추억할 거리도 안되는 ‘과거’에 조금은 기대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제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albook|small-jpg|right|8956601615|]“라이드백”의 배경이야 누가 보더라도 60년대 일본 안보투쟁의 알레고리이고, (무단 링크 - 일본의 운동) 작가 역시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작가 왈, “RIDE BACK - 이야기에 등장하는 머신 호칭 외에도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라이드백이라는 바이크 머신의 개발과 상용화에 걸린 시간이 필요했겠죠. 그럴듯한 메카닉도 없이 대놓고 구닥다리 얘기를 꺼내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어쨌든 미래 같지 않은 미래에서 어쩌다(!) 라이드백에 올라탄 소녀 오가타 린은 학생운동의 표상icon이 됩니다. 놀라운 행동 능력에 대중적 인기까지 더해져 그녀는 각 정치세력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죠. 이용당하거나, 제거되거나.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의 의지로 라이드백을 타고 집회 현장을 누빕니다. 걷고 달리고 점프하는 그녀의 Fuego(불)는 말 그대로 불타는 열정이군요.

“남쪽”의 주인공은 화자인 아들 “지로”이지만, 부모님과 아이들(누나, 지로, 여동생)이 각각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 - 줄여서 革共同, 무시무시한데요. - 에서 60년대 말까지 활동하다가 탈퇴한 아나키스트이고, 공권력, 세무서, 학교 등 국가기관과 사사건건 충돌하는데다 옛 정을 생각해서 협력한 과거 조직에게도 배신을 당합니다. 아주 제대로 사회 부적응이죠. 자식들도 나이에 맞춰 험하게 살기는 매한가지고, 어머니는 누구 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는, 뻔하긴 하지만 누나의 비밀과 더불어 일종의 수수께끼 장치로 독자의 흥미를 끕니다. 아버지란 인물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좌익 활동가였을까요? (방수차에 미군 팬텀기까지…) 어머니가 칼로 사람을 찌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들 가족은 과연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구석으로 내몰려 제목대로 남쪽으로 튀기는 합니다만 남쪽이라고 만만하지는 않겠죠.

두 이야기의 구체적인 사건들은 책을 직접 보고 확인하시고, “라이드백”은 연재 중이라서 결말을 종잡을 수도 없답니다. 그래도 저 나름의 감상과 앞서 약속한 공통점은 정리를 해야죠.

라이드백 소녀 오카타 린이나 전설적인 활동가 우에하라 이치로가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운동에 환멸을 느꼈거나, 우익에 몸담고 있거나, 아무튼 ‘열혈’이 아님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해방구인 대학의 뒷문에서 배신당하고 체포되는 린, 튀어 간 남쪽에서 또 도망쳐야 하는 우에하라 부부의 모습은 행복한 삶과는 삼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혹자 왈, 우에하라 이치로는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있다는군요.) 그것도 동료에게, 조직에게 배신을 당한 채 홀로라니 학생운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운동을 하면 삼대가 고생한다는게 허튼 얘기는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남쪽”의 결말은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니 너무 우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웅이 자신의 조직에 배신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스토리야 흔합니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고난을 극복하고 큰 뜻을 펴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늘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결국 혼자니까요. “남쪽”의 지로네 가족은 남쪽에서 이웃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그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여행을 한다는 캐나다 출신 백수 한 명입니다. 자치회의 아이콘 역시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초라한 개인으로 돌아가 끌려다닐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지로의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하나 봅니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중략)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세상은 뭔가를 해보기엔 너무 단단하지만, 꿈꾸는 걸 포기하기엔 아직도 정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그리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애쓰나 봅니다. (노마진 풍으로)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도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금은 슬프지만 뭐 어떻습니까. 다들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건데. 별 대단치도 않은 조직간의 갈등에 사람을 죽이고 구호를 외쳐야만 하는 아빠의 친구 아저씨도 있는 거고, 자치회의 소모품으로 라이드백 소녀의 대역이 되어 경찰의 한 방에 저세상 가버린 철없는 학생도 있으니까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집회 현장을 자신의 무대로 삼아 - 한때 잘나가는 댄서였거든요 - 학생운동의 아이콘으로 데뷔하는 린과, 법이고 소유고 다 무시하며 불쌍한 시골 순경을 자본가의 앞잡이라고 호통치는 아버지가 저에게 전하는 공통의 메시지는, 네 생각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사상이야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이지만, 혼자 결정하고 행동할 만큼 컸다면, 국가가, 학교가, 군대가, 회사가 주입시킨 말도 안되는 주장은 치워두고 - 그런거 주입 받은 적 없다고 불끈하실 분들은 그냥 그대로 살면 됩니다 -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주인공의 삶입니다. 린이 Fuego에 올라탄 건 우연이었지만, 시위대의 중심에 선 건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로는 어쩌다 이상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의 집을 지키기 위해 꼴보기도 싫던 아빠와 함께 투쟁하며 어린 아나키스트가 되어갑니다. 운동이 무너지고 타락하고 희화화된 시대에 가장 위력적이고 파괴적인, 끝까지 저항하는 주체는 결국 나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주사파?) 지로에게 고독을 두려워 말라는 아빠의 당부는, 어째 너무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이 두 책의 이야기는, 무대 위로 날아오를 라이드백도 없고 튄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남쪽도 없는 보통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그런 스토리가 아닙니다. 땅 주인과 맞서는 “남쪽”은 말할 것도 없고 - 제가 전세금을 날려먹은 적이 있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 , “라이드백” 5권까지의 진행이 전반적으로 암울하긴 하지만 이 작가는 “공상과학 에디슨”에서 맛만 보여준, SF적인 비전을 가졌으니까요. 하긴, 제가 이런 글을 써서 올리는 것만 봐도 이 책들은 뭔가 힘을 주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P.S.
“남쪽”의 말미에서 지로 어머니가 떠나기 전, 딸에게 감동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 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냐?”
아줌마, 큰딸은 이미 다 컸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