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담
꼬마 수학자 탄생 - 딸에게 숫자의 개념을 가르치며
느린시간
2010. 8. 28. 08:44
큰 딸, 바란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게 묻는다. 여섯 살이니 궁금한 게 많다.
아빠, 왜 하나 다음에 둘이고, 둘 다음에 셋이야?
바란이는 손가락을 써서 간단한 덧셈을 할 줄 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더하기 빼기의 산수 문제가 아니라, 자연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 때 집합론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만사 제쳐두고 이 꼬마 수학자에게 만족스런 설명을 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페아노 공리계를 이용해 볼까.
1. 추상화된 수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여기 네가 좋아하는 사과가 하나 있어. 바나나가 하나 있어. 책이 한 권 있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하나'라고 이야기해.
응. 그런데 책은 한 '권'이야.
맞아. 뭔가가 하나 있을 때, '하나'라고 말하고, 숫자로는 '1'이라고 하지, 영어로는?
One!
그래.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란 뜻이지. 그리고 사과, 바나나, 책이 둘 있으면 '둘'이라고 하고, 또 셋 있으면 '셋'이라고 해. (동어반복이지만 이해해 주겠지.) 영어로는?
Two, three!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말을 쓰지만, 모두 이렇게 개수를 센단다.
2. 순서
그런데 바란이가 궁금한 게 뭐였지?
응, 왜 하나 다음에 둘이고, 둘 다음에 셋인지.
그건, 사과 하나가 있는데 하나가 더 있으면 몇 개가 돼?
사과 두 개.
사과 두 개가 있는데 하나가 더 있으면 몇 개가 돼?
세 개.
그래서 하나 다음엔 둘이고, 둘 다음엔 셋인 거야. (비약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 하나 다음에 셋이고, 셋 다음에 둘이라고 생각해 봐. 하나가 셋이 되려면 몇 개 더 있어야 해?
두 개.
셋이 둘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해?
하나가 없어져야지.
그렇게 개수가 늘어났다 줄었다 하면 이상하겠지? 그래서 하나씩 더해가며 순서를 매긴 거야.
그런데 아빠, '개수'도 '순서'도 모두 어려운 말이야.
^^;;;;;;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한 뒤, 바란이는 숫자로 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A4 종이를 한 번 접더니 표지를 포함해 네 쪽짜리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을 적었다.
"하나1 더하기 하나1는 2이 됩니다"
책 내용은 사과를 이용한 여러 가지 덧셈이었다. 사과 하나 더하기 하나는 2, 사과 둘 더하기 둘은 4. 이 아이는 아빠와 대화하기 전부터 더하기를 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조바란 저, 덧셈의 정석
사과 둘 + 초콜렛 하나 = 3
문득 우리 딸이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