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무료 백신 논란 - 사용자의 입장에서
집과 학교에 PC가 있다보니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백신을 쓰고 있습니다. Windows XP에서는 보안 차원에서 백신이 없거나 최신이 아닐 때 경고를 하고 있죠.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구성원들을 위해 라이센스를 맺은 제품(V3, 바이로봇 등)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현재 학교 PC에는 전산실의 정책에 따라 V3 Internet Security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업데이트 및 보안 정책이 전산실에서 관리됩니다. 그러나 집의 PC 두 대는 각각 AOL에서 무료 배포했던 Active Virus Shield (Kaspersky의 엔진을 사용했고, AOL은 현재 다른 백신을 배포 중)와 avast! 4 Home Edition을 쓰고 있습니다. 둘 다 무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Active Virus Shield 같은 경우는 AOL과 Kaspersky의 계약이 끝났음에도 업데이트가 계속 제공되더군요. avast!는 한글판도 있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좋은 무료 백신이 많습니다. 저는 이들 백신에 대한 정보를 주로 여름하늘님의 블로그 SkySummer.com에서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료 백신 논란
나는 개인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는 업체들이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 보안 쪽은 개인 시장에 비해 기업 시장이 훨씬 크다는 정도 밖에는 모른다. 나의 관심은 내 PC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싸고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자료들은 국내의 몇몇 백신 SW보다 해외 무료 백신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리라. 그런데 세상이 쉽게 변하는 법은 없나보다.
최근 네이버가 'PC그린'이란 이름으로 무료 백신을 서비스하려다 무기한 연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기사 참고). 'PC그린'이란 서비스는 네이버 PC그린 1차 사용후기를 보면 바이러스/스파이웨어 검사 및 치료와 PC 최적화 도구이다. 바이러스 백신 부분은 유명한 Kaspersky의 엔진을 쓴다고 하니 국산 유료 백신과의 경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리 나라 보안업계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협상이 진행되고는 있겠지만 양 쪽의 생각은 평행선인 듯하다. 거대 포탈의 불공정 경쟁 vs.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이 사안에 대해 블로그를 통해서도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 나온다.
네이버와 무료백신에 관한 음모론 - Forget the Radio (팟캐스트 방송)
네이버에 대한 안철수 연구소의 한심한 딴지 - SkySummer.com
사실, 반대된다기 보다는 서로 다른 측면을 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음모론)는 네이버의 시장 확대 전략(음모?)에 대해 보안 업체들의 반발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네이버라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각심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후자(딴지)는 구글과 AOL 등의 무료 SW 배포를 예로 들면서 공익적인 측면에서 무료 백신이 당연함을 얘기하고, 안티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인터넷 시장의 변화 - 플랫폼으로써의 웹 - 를 거부하는 안철수 연구소의 딴지가 소비자의 선택 기회를 없애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
이런 논란의 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AOL이 Active Virus Shield를 배포할 때 우리 나라 백신 회사들이 왜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업무용 오피스 SW(OpenOffice.org)조차 무료로 배포되는 세상에서 딴 나라 회사의 정책에 딴지를 걸 배짱은 없었으리라. 앞서 소개한 글(음모론)에서는 네이버의 무료 백신이 불공정 거래(부당하게 낮은 가격, 부당한 고객 유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식으로라면 경쟁력 있는 모든 공개SW는 다 불법이게? 물론 우리 나라 인터넷 환경에서 AOL과 네이버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 논란의 핵심은 '막강한 힘을 가진 네이버'의 사업 확장으로 인한 새로운 독점의 가능성이 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용자들은 근시안적이다. 당장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지금 고려한다는 것은 듣기엔 좋아도 위험하고, 기대했던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 경우에도 네이버의 무료 백신은 바이러스와 스파이웨어(악성코드) 때문에 몸살을 겪고 있는 개인 사용자들에게 단기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한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이 결국 네이버의 지배력을 키워서 우리 나라 보안 업체들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도 손해를 보는 상황을 불러오게 될까? 그런 상황은 얼마만큼 확실할까?
"이렇게 네이버가 무료 백신을 공급해서 안철수 연구소 등의 백신 업체가 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네이버 말고는 백신 서비스 회사가 없어지고, 경쟁이 없는 독점 상황이 되면 네이버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습니다. 유료로 바꾼다거나, 부가 조건을 붙인다거나.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그 백신을 써야 하는, 독점적 서비스에 종속되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 "네이버와 무료백신에 관한 음모론"에서 옮겨 적음.
그러나 나는 위의 시나리오에서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1. 네이버의 무료 백신 때문에 망해버릴 보안 업체라면 차라리 지금 당장 망하는 게 낫다. 혹시 지금 우리 나라 보안 업체들이 네이버의 무료 백신과 경쟁할 자신이 없다는 것인지? AOL이 배포한 AVS는 다시금 좋은 반례가 된다.
2. 네이버의 지배력은 제한적이다. 백신은 운영체제와는 다른, 독립적인 SW로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다. "네이버 백신 안쓰면 네이버 못 써!"라는 황당한 정책이 통할 리도 없고, 네이버를 쓰면 무조건 네이버 백신이 자동으로 설치되게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요는 "울며 겨자먹기로" 네이버 무료백신을 쓸 사용자는 없을 것이란 말이다. 네이버 무료 백신 때문에 외국 보안 업체들이 망할까? 이 분야에 '한국적 특수성'이란 말장난일 뿐.
나는 Microsoft의 Windows가 독점적 상품임을 안다. 그리고 Internet Explorer와 Windows Media Player가 끼워팔기처럼 따라오면서 지금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질서는 지배적 사업자에 의해 언제나 왜곡될 수 있으므로 소비자들의 선택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는 또한 냉정하다. 과거의 Realplayer가 단지 Microsoft의 불공정행위에 의해서만 사라졌을까? 점점 사용자가 늘고 있는 Firefox 웹 브라우저의 성공은 어떠한가. 공정거래법 또는 반독점법의 취지는 경쟁 촉진과 이를 통한 소비자의 이익이다. 나는 네이버의 무료 백신이 이런 목적에 아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포털, 다른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도 부디 좋은 무료 백신을 많이 배포하면 좋겠다.(엉터리 백신 말고!) 이는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며, 장기적으로 배포 업체와 백신을 제작하는 보안 업체,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이다.
PS.
한겨레21에 이 일을 다룬 기사가 있다. 죽음을 부르는 공짜의 유혹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이 ‘공짜’의 뒷면을 후벼보면 러시아산 엔진으로 저렴하게 백신의 틀을 갖추고 거기에 이름만 새로 붙여 공급하겠다는 심산이 드러난다. 일찌감치 국내 시장 진입을 노리던 러시아 업체로서도 괜찮은 선택이다. 하나 365일 24시간 대응 체제를 갖추고 보안 전문업체를 꾸려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쉽게 시장을 뒤흔드는 꼴이다.Kaspersky 엔진을 "저렴한 러시아산" 짝퉁으로 치부하다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백신을 만드는 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쉽게 기사를 쓰는 꼴이다. 기자는 다른 무료 SW에 대해서도 이런 주장을 펼 것인지 궁금하다.